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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21 [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9 (完)
- 2016.01.21 [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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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이안즈] 잃다
짧게 쓰고 싶었습니다 (리얼)
배경은... 과거의... 일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20세기 이전... 대강 이런 이야기를 가졌구나... 라고... 생각해주세요...
오늘은 퇴고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귀찮기 때문이다 이것은 낙서이다
나는 요시와라 라멘토를 떠올린다 오노유우키 최고
360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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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9 (完)
못된 고등학생과!!!!!
어른이만!!!!!!
읽어주새오!!!!!!!!!!!!
019
얼굴이 붉어진 네 모습이 보인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다. 눈에는 눈물이 조금 고여 있다. 눈동자가 흐리다. 속눈썹이 촉촉이 젖어 엉켜 있다. 네 어깨에 잇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쉰다. 마른 입술에 내 입을 갖다 댄다. 순순히 벌어진다. 등이 쓰라리다. 손톱으로 할퀸 자국이 나 있겠지. 허리를 조금 움직이자 그녀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미안, 미안해.”
너는 내 밑에 있고, 나는 네 위에 있다. 내 몸이 빛을 가려 네 얼굴엔 그림자가 져 있다. 내 몸을 지탱하는 팔. 그 끝에는 네 손목을 결박하고 있는 내 두 손. 숨소리가 아직도 거칠다.
너는 최고의 애인이다. 내 품에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어깨. 달콤한 신음들. 다른 사람이라면 육체적으로만 보일 우아한 몸짓들.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몸. 고통을 덜어내고자 허우적대는 입술. 고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너의 몸 곳곳. 깔끔한 선을 가진 목. 부드럽고 말캉한 살. 나를 감싸는 가는 팔. 단연 최고의 연인이다.
사랑을 참을 수가 없어 몸을 숙여 볼에 입을 갖다 댄다. 입술로 물 듯 말 듯. 쪽 소리가 난다. 아직도 널 가득 채우고 있는 내 몸. 계속 채우고 싶어 할 나.
“몸은 주어도 입술은 내 주지 않는다고, 그랬었는데.”
나는 말한다. 너의 입술을 가졌어. 네 마음도. 너의 몸도.
“비로소 널 가졌어.”
그러자 그녀는 웃는다. 아하하 하고. 웃음소리에 소름이 끼친다.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다. 나에게 붙잡힌 채로 웃는다. 간담이 서늘해진다.
“저를 어떻게 보시고 계셨는지, 마음대로 생각해도 될까요?”
말을 마치고는 또 웃는다. 이건 비웃음이다.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한다. 무의식 속에 덮어졌을 것만 같던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저를 가졌다고요…….”
소리 내어 웃길 멈춘다. 측은함을 담은 눈에 미소만 띤다.
“오만하시네요.”
갑자기 이 무슨 말인가 싶다. 지금 웃어도 미소가 자연스럽지 않으리라는 게 느껴진다. 네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다.
내 확신이 아니었을까.
“나는 단 한 번도 마음을 내어 준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내가 굳게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닌 거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 달콤한 연인이었는데. 나의 사랑. 나의 애인.
나는 우스꽝스럽다.
“거짓말.”
그녀는 진심이다.
“맹세코 진짜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보였던 행동들을 떠올린다. 좀 전만 해도 나를 허락하던 네가. 멋쩍게 나를 툭툭 치던 네가. 피곤한데도 나를 만나러 올까 고민했다던 네가. 나를 거부하지 않던 네가. 내 무릎에 눕던 네가. 내 고백에 입을 맞추던 네가. 나를 기다리던 네가. 학생회실에서 내 셔츠의 단추를 풀었던 네가. 나를 집으로 불렀던 네가. 어두운 골목 속에서 바라보았던 네가. 대관람차 속에서의 네가. 솜사탕을 먹던 네가. 나를 두 팔로 끌어안아 주었던 네가…….
그게 진심이 아니라면 대체 뭐야. 내가 우스워질 걸 알면서도 묻는다. 믿기지 않는다.
“진심은 맞지요. 단지 내 진심은 당신의 것을 욕망하는 거였지.”
그리고 나열한다. 당신의 아름다운 외모. 듬직하고 큰 키. 고운 목소리. 부유한 지갑. 배려 해 주던 태도. 사랑이 느껴지는 모든 언행들. 그녀는 웃는다. 웃어. 나열한 것들이 사랑스럽다는 얼굴이다.
“이 모든 걸 좋아했지만 사랑 했다고 할 수는 없네요.”
눈가가 욱씬거린다. 코끝이 매워진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진다. 네게 추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애써 감정을 압축해 잠시 감추어 두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 난 너에게 어떤 존재니?”
한 음절 한 음절. 발음하는 것이 어렵다. 입이 구겨진다.
“아직도 날 혐오하고 있어?”
눈앞이 흐려진다. 그녀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다. 웃는다.
“혐오하지 않아요.”
그녀는 조용히 말 한다. 내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럼. 그럼 무엇이야? 사랑을 갈구하듯 묻는다. 아니,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맞다. 이미 한 풀 꺾여버린 희망인데도, 혐오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자 다시 살아난다.
“이제 싫어하지 않아요.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는 건 더더욱 아니예요.”
아. 신음만 나온다.
“혐오라는 감정을 쓸 정도로 가치 있는 사람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행복했는걸요.”
그 말이 어찌나 순수하게 느껴지는지. 얼마나 천진난만하게 느껴지는지. 잔인했다. 그 와중에 ‘행복’이란 단어를 듣자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진 나를 발견하고 비참했다. 내 마음은 더 이상 구멍 날 곳이 없는데도, 너 살아 있구나. 이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단어에 반응을 하고 덩달아 기뻐지는구나. 내 자신을 동정한다.
아. 나는 아주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는 상태인 짐승이다. 차라리 죽어 버릴 것이지.
그녀와 첫 약속을 하며 나를 걸었던 손가락. 그것은 고리가 되었었다. 나를 걸어주었던 이 모든 것들이 부서져 떨어진다. 나는 무너져 내린다. 주변은 어둡고, 바닥은 끝이 없다. 언제까지고 떨어지기만 할 것 같다.
네 모든 태도가 새로이 평가 된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고, 나를 염려하지 않았다. 그저 불장난 같은. 우리의 관계는. 그래, 우리의 관계는 나 혼자만이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네 몸을 채우고 있다. 네 손목을 결박 하고 있다. 나는 네 몸을 가졌다.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네 몸 뿐이다. 너는 내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내 목을 옥죄이고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아.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네 몸 뿐. 네 마음이 아니면 내겐 이 아름다운 육신도 소용이 없어.
결국 나는 내가 가장 갖고 싶었던 걸 갖지 못했다.
서럽다. 서글프다. 우울하다.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내 밑에 자리하던 네 볼에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진다. 이 와중에도 네게 내 우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왼손을 떼고 눈물을 훔친다. 아프다. 네 시선은 여전히 내게 꽂혀 있다. 네 표정이 굳어진다.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나를 당겨 끌어안는다.
“울지 말아요.”
그 말에 위안이 되는 내가 한심해진다. 서글프다. 서글프다. 내 무엇이 네 성에 차지 않아 나는 아직도 너에게 사랑 받지 못 할까. 그런데도 다정하게 울지 말라 달래주는 네 말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네 등을 감싸고 섧게 운다. 소리 내어 운다. 네 한 손은 내 머리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은 등을 부드럽게 토닥인다.
내 울음이 널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하게 된다. 나를 동정이라도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전보단 나를 더 사랑해 주지 않을까. 아니, 좋아해 주려는 노력이라도 하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았던 네 다정함. 이젠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아.
내가 애처롭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봤고, 나는 너를 안았다. 나는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네 육체에 욕망을 풀지 않은 곳이 없지만, 네 마음에 들어가 자리 할 곳도 없다. 너는 나를 끌어안고 있다. 나는 네게 얼굴을 묻었다.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바라본다. 너는 웃는다. 내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미소로. 내린 비는 그쳤고 흐린 날은 개였다. 첫 약속 당일처럼 따사로운 햇빛이다. 바깥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가 아름답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영화가 아름답고, 우리가 앉아 있었던 자리가 아름답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 침대가 아름답고, 내가 안은 네가 아름답다. 아픈 말을 하는 네가 아름다웠다. 다시 네 얼굴을 확인한다. 너는 여전히 웃고 있다.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되어 내 곁에서 떠나지도 않았고, 엘리자베스 베넷이 되어 나를 사랑하게 되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했었던 롤리타도, 연인의 프랑스인 소녀도 아니었다. 그래도 너는 아름답다. 사랑한다는 말이 차오르지만 삼켜 목 뒤로 넘겨 버린다.
그 때와 같은 너도, 이런 너를 담고 있는 세상도 여전히 아름답다. 지독히 아름답다.
3878자
아악 아악 아아악 멘탈이 너무 아프다
BGM은 영화 롤리타(1997) ost를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가장 맞는 것 같아서요
오늘로써 <아름다워 보여>를 쓴지 한달 째 되는 날이네요 이 때 딱 끝내니 기분이 이상하군...
흐흐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지에는 내용을 조금 수정 해서 넣을 예정이에요 쓰면서 넣을걸 싶었던 것도 몇 개 있었고... 그리고 이후 에이치와 안즈의 이야기 조금조금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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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8
못된 고등어와 어른이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으니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조심...!
018
“미안해.”
나는 그녀에게 사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봐 둔 곳이 하필 고장이 나 급한 공사를 하느라 오늘은 들어가기 힘들었다. 추하게 고집 부려 기어코 시설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기껏 멀리까지 와 주었는데. 미안해. 미안해.
“괜찮아요. 사실 좀 으리으리해서 겁이 났달까…….”
그래도 어깨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사과 했다. 손으로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오늘 그녀의 차림새는 신경을 썼다. 신발부터가 그랬다. 이런 신발도 있었니? 굽이 있었다. 키가 훌쩍 컸다. 반올림 하면 십의 자리 숫자가 바뀔 것 같다. 갈색 워커였다. 굽이 얇지 않아서 그나마 안정 되어 보였지만 역시 높은 신발은 영……. 다리에는 커피 스타킹을 신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후후후, 나도 남자인걸. 치마는 분홍색이었다. 흰 색이 많이 섞인 분홍색. 색 자체도 연했다. 그런 것 치고는 예뻤다. 만져보면 까슬까슬할 것 같다. 위는 하얀 블라우스인데,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저번과는 디자인이 다르지만. 검은 색 클러치백을 들었다. 손톱에는 금발을 떠올리는 매니큐어를, 왼쪽 손목에는 은색 손목시계를 차고 머리는 틀어 올려 빛나는 핀을 꽂았다. 너처럼 반짝 거려.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는 모습이 우아했다. 너의 새로운 매력을 느꼈어. 너에겐 네 특유의 기품이 있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신경을 써서 나왔는데, 시작부터 망쳐 버렸다. 가뜩이나 일기 예보가 틀려 비를 그대로 맞았다. 내 몸보다도 우선은 그녀가 망가지지 않을까.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짤막하게 하고 머리와 옷자락에 묻은 빗물을 털어냈다. 가벼운 손짓이 우아했다. 경사짐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진 손가락들. 각이 진 채 따로 노는 가는 손가락들이 야하게 느껴졌다.
“오늘 정말 예쁜데. 미안해.”
그러자 전에 듣지 못했던 도도한 목소리로 받아 쳤다.
“다른 날은 안 예뻤나요?”
아름다웠지.
“그나저나 영화 정말 보고 싶었는데.”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집으로 가지 않으련?”
그녀가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왜 놀라니?”
“그래도 되는 거예요?”
소녀 같은 네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되지.”
“아, 안 돼요. 못 가겠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라리 우리 집으로 갈래요?”
블루레이가 되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그럼 DVD를 봐야겠다. 이럴까봐 둘 다 구해 놓았는데. 심지어 USB에 담아오기까지 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왔다. 그녀의 집과 가까운 역에 도착했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살까, 라고 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골랐다. 그녀는 그저 우산인데 왜 이리 신중히 고르냐고 했다. 거기 있는 우산들은 아주 저렴해서 품질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쓸 것이라면 안전한지 아닌지, 쥐기는 편한지 여부를 따져 보고 사야만 했다. 결국은 그녀가 비닐우산을 몇 번이고 고집해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골랐다. 아무 우산이나 하나 더 집으려고 했다. 그녀가 왜냐고 물었다.
“하나 씩 써야지.”
“하나로 쓰면 안 되고요?”
우산은 하나만 샀다.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우산을 펼쳤다. 내 재킷을 걸치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이 가까이 붙었다.
어두운 골목. 벌써 다섯 번째다. 오늘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빗방울 때문에 바지 밑자락이 젖어 갔다. 신발도 꽤 축축해 졌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군. 그녀의 신발은 괜찮을까 물어봤더니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신발이라고 했다. 새로 선물 하겠다고 했더니 도망가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걸로 바꾸자고 했다. 그녀가 히히 웃었다.
“오늘도 부모님이 안 계신 거야?”
“아버진 출장에서 아직 안돌아 오셨어요. 독일로 가셨거든요.”
“어머니는? 엄격 하시다면서.”
“외가 식구들과 놀러 가셨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해서 식사 하고 계실 거예요. 저한테 설거지 잘 해 두라고 당부하셨어요. 학원 친구도 데려오지 말고. 죄다 남자인 거 아시니까.”
신기했다. 내가 봐 왔던 것들과는 다른 삶. 그녀를 중심으로 더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집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 어느 곳도 들리지 않고 곧장 방으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 남는 옷걸이를 가져와 걸치고 있던 재킷을 걸어두었다.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시계도 벗어 휴지로 물기를 닦고 보석함에 넣었다. 아, 오르골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발로 컴퓨터 본체를 켰다. 이유 없이 사랑스러워져 아직도 조금 젖어 있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녀가 몸부림쳤다. 자긴 할 일이 많단다. 놓아주는 대가로는 키스를 받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녀는 서 있던 나를 보고 미안하다며 의자를 가져와 주었다. 저번보다는 튼튼해 보인다. 식탁에서 가져 온 것인가. 그녀는 나를 앉히고, DVD를 요구했다. 나는 옷에서 DVD를 꺼냈다. 거기에 들어가요? 그녀가 감탄했다.
DVD를 플레이어에 넣고 실행을 했다. 외출한 옷 그대로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예뻐서 매만졌다. 그녀가 거절 하지 않았다.
1920년 프랑스령 베트남. 소녀는 배 위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성용 중절모와 화려한 구두,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양 갈래로 땋은 채로. 부유해 보이는 하얀 양복을 입은 중국인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주인공 정말 예쁘죠…….”
내 옆에 앉아 있는 소녀의 말은 순수한 감탄이었다.
남자는 소녀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어색함 속에서 이야길 나누었다. 다리를 건너며 차가 덜컹거렸다. 더 어색해진 것 같다. 남자는 그녀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그녀 쪽으로 손을 두었다. 점점, 점점 더 다가갔다. 두 사람의 소지가 맞닿았다. 아무것도 아닌 척 하면서 손가락 끝으로 살며시 쓰다듬고 매만졌다. 창밖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모습. 아예 덮어버리는 손. 이제 꼭 쥔다. 손가락 사이를 탐해 깍지를 낀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차는 달리기만 한다.
그녀 무릎 위에 있던 오른손을 내 왼손으로 덮어 버렸다.
도입부부터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야한 걸 알고 보는데도 마음이 깜짝 깜짝 놀란다.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니 아주 열중한 상태였다. 이런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겠지. 내가 준비한 것에 푹 빠져 있어서 감사했다.
잠시 그녀에게 정신을 판 사이에 장면이 전환되었다. 정사. 상대는 소녀잖아.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는 (내가 느끼기엔) 미묘한 그 둘의 관계가 나왔다. 소녀는 남자를 통해 욕망을 경험했고, 둘의 관계는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순전히 창녀와 그녀의 성을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소녀에게 돈을 주기도 했으니까. 소녀는 무척 가난했다. 가족들은 그녀에게 욕을 했지만, 어머니는 그 돈을 받았고 큰 오빠는 빚을 갚았다. 한숨이 나왔다. 이 어린 소녀가 무슨 잘못이 있어 이렇게 모질게 살고 있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소녀는 나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본 남자의 얼굴에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라도 저럴 거야. 내 옆의 소녀가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남자의 품에 꼭 안겨 붙어서 춤을 추고 있으면. 그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으면.
소녀와 남자의 관계는 아슬아슬 해 지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정략결혼 상대가 있었고, 집안 때문에 그 상대와 결혼을 해야 했다. 남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여 졌다. 그래도 그 둘의 정사는 계속 되었다. 이런 거 우리가 봐도 되는 거야?
그녀는 몰입해 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걸 너도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손에 깍지를 끼려고 했지만, 그녀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남자는 아버지의 반대를 이기지 못했다. 소녀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남자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저 멀리서 그를 바라보던 소녀. 그녀를 발견한 남자. 애처로웠다. 시선이 방해를 받아도 줄곧 소녀를 향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과 정략결혼을 하는 건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았다.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영화는 끝났다. 러닝 타임은 두 시간 정도. 그녀는 DVD를 꺼냈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 영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어 보아야 알 것 같다.
소녀와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이 우리에게도 있다.
“재미있었어요.”
어조가 어색했다.
“근데 어떻게 미성년자를. 그래도 이쪽이 더 낫지만요.”
“다른 쪽은 누구니?”
“롤리타에 걔요.”
어지간히 싫어하는구나. 저 남자도 그녀의 비판을 듣겠지. 하긴 상대는 미성년 여성이니까. 그녀는 미성년 여성의 육체를 탐내는 걸 무척 싫어하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파렴치하지.
“배경 음악 참 아름다웠어요. 베트남의 풍경도. 감정 표현도 잘 되었고. 여태껏 남아 있을 만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DVD를 챙기려다가,
“가질래?”
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래도 되냐 물었다. 네게 주는 건 아깝지 않지.
그녀는 내게 DVD를 받아 책꽂이에 넣었다. 이제 보니 저 구석에 DVD가 몇 장 쌓여 있었다. 고전 영화였다.
의자에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어색했다. 고개를 들지 못 했고, 괜히 손장난만 쳤다. 그녀는 손톱을 긁고 있었는데, 그러다 고운 매니큐어 다 벗겨질라.
그녀가 나를 툭툭 쳤다.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멋쩍게 웃으며, 눈은 마주치지 못한 채로 내 팔만 툭툭 치고 있었다. 마른 입술을 핥자 금방 촉촉해졌다. 그녀는 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입술이 예뻤다.
조금 망설였다. 내가 이래도 될까. 한참 자극을 받았는데, 이래도 될까. 참아내기엔 우리 사이는 합의 된 관계였고, 그녀가 너무 예뻤다.
사랑이 넘쳐서 풀어야 한다는 핑계를 댄다.
턱을 붙잡고 고개를 기울여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가볍게. 이 한 번으로 내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다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겠지. 떨어지자마자 다시 한 번. 한 번만 더. 조금만. 더 깊게. 이 정도만 더 깊게 할게. 조금만, 조금만. 이번 한 번만.
입술을 깨물었다. 내 어깨를 밀어내는 손이 느껴졌다. 무시했다. 우악스럽다. 입 속을 무섭게 훑었다. 지속된 갈증 끝에 혀에 닿은 물 한 방울인 마냥.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입술로 귀를 앙 물고 고개를 숙였다.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목이 훤히 드러났다. 일상에서 이 정도는 멀쩡히 풀고 다닐 수 있다. 그녀의 목에 욕망이 일었다.
셔츠의 단추를 둘 풀었다. 목 밑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목 밑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뼈가 만져졌다. 그 뼈를 입으로 적셨다.
셔츠의 단추를 셋 풀었다. 가슴골이 드러났다. 참을 수 없었다. 금방.
셔츠의 단추를 넷 풀었다. 가슴을 감싸고 있는 속옷이 드러났다. 옆으로 확 젖혔다. 살갗이 보였다.
셔츠의 단추를 다섯 풀었다. 갈비뼈가 드러났다. 손가락으로 한 가닥 쓸었다.
셔츠의 단추를 여섯 풀었다. 배가 훤히 보였다.
셔츠의 단추를 일곱 풀었다. 상체를 꽁꽁 싸고 있는 천은 속옷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나를 밀어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내 옷깃을 끌어당겼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시선은 밑으로 한 채 천천히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그녀가 고개를 기울여 내 입술을 적셨다. 나는 물렸고, 탐해졌고, 작은 소리들을 흘렸다. 바닥에 흘린 소리들은 사라졌다. 앞으로 네가 흘릴 소리들이 이곳을 가득 채우지 않을까. 무릎까지 잠길 정도로. 나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손을 내리다 치마 속에 엄지손가락을 넣었다. 그대로 죽 내렸다. 그러자 그녀가 놀라며 내 목에 감았던 팔을 풀었다. 곧 치마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커피색 스타킹이 눈에 들어왔다. 팔을 교차해 니트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시 끌어안았다. 거의 모든 살과 살이 맞닿아 체온이 느껴졌다. 따뜻했다. 몇 번이고 입술을 가지려 들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셔츠를 벗겨버렸다. 방해 되는걸.
그녀가 내 바지의 벨트를 풀려고 했다. 생각대로 잘 되진 않은 것 같다. 위아래의 버튼을 꾹 눌러 가볍게 풀었다. 손길이 억셌다. 부끄러운 듯이 멋쩍게 웃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왔다.
조심스레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녀가 발을 꼿꼿이 세웠다. 두 다리를 겹쳤다. 손가락으로 다리를 쓸다 스타킹을 찢었다. 그녀가 놀라 일어났다.
“새로 사 줄게.”
스타킹을 찢어내자 드러난 속살에 입을 맞추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조그마한 비닐을 꺼내 침대에 올려두었다.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고갤 들었다. 너를, 내 마음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말로써의 언어는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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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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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무엇을 위해서 시간을 낸 걸까.
모종의 사정이 있었다. 학교가 일찍 끝났다. 방과 후의 일도 없었다. 모처럼 학생회는 바쁘지 않았고, 연습도 쉬는 날이었다. 그녀와 돌아다니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곳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소망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어서 연락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영 좋지 않았다.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이렇게 좋은 날도 잡기 힘들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오늘이 아니면 어때.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은 많을 거야. 스스로 위안을 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에이치.”
케이토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렸다. 내게 요즘 얼굴이 많이 좋아 졌다고 했다.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케이토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3학년 A반 교실은 금세 텅 비어 맑은 하늘만이 들어와 있었다. 그 속에 나는 덩그러니 서 있었다.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왼손 엄지와 중지로 양쪽 입꼬리를 만졌다. 웃고 있었다. 이 기분이 새로워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뭐가 그리 좋아요?”
여자애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서 있었다. 한 층 어두워진 얼굴에 축 늘어진 어깨, 문에 기대어 서 있는 몸. 힘겨워 보였다. 그렇게 느끼자마자 달려가 어깨를 붙잡았다.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니?”
“그건 맞는데요. 그래도 올까 말까 생각 하다 왔어요.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한 것뿐이라.”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다면서 전날과 비교해 컨디션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였다. 많이 아픈 거 아닐까? 나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그럼 집에 가서 자야지.”
“오늘 더 일찍 자면 되겠지요.”
그런 걸로 내 마음이 놓일 리가 없잖아. 그녀는 힘을 쭉 빼고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하루 종일 못 봤잖아요. 카페 갔던 날엔 그렇게 졸졸 따라다니더니.”
슬쩍 고개를 들고는,
“벌써 마음이 변한 거예요?”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귀여워 웃었다. 너는 이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병약하신 분이 마음 하난 건강하단 말을 들을 땐 상상조차도 하지 못 했지. 나는 웃으며―절로 나와 말과 섞여 버렸다―말 했다.
“그럴 리가. 내가 따라 다녔던 거 알고 있었어?”
“솔직히 티 많이 났어요.”
“그래? 이런, 내가 널 많이 좋아하나봐.”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칭얼댔지만 내겐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널 바라보는 데만 주력해 내 기척을 숨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기에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을까?”
“잠이 오지 않아서, 뜬 눈으로 누워만 있었어요.”
몸이 아주 아플 때 잠에 들기 힘든 적이 있었다. 자면 좀 나아지리라고 믿고 누웠지만 눈이 감기지 않았다. 어쩌면 자느라 덜 느꼈을 밤과 새벽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밤을 지새웠다. 그 기억이 나 어깨를 붙잡았던 손을 풀어 끌어안았다.
“아팠어?”
“여기 학교, 아니. 전혀요.”
학교라는 장소에서는 조금 힘든 걸까. 하긴 여긴 일반 교실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로우니까. 쿠누기 선생님이라도 뵈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 맛있는 거 사 줄까? 아, 아니. 오늘은 피곤해서 무리이려나?”
“오늘은 조금 무리무리.”
무리무리. 그 말이 귀여워서 웃었다가 자주 웃는다며 타박을 받았다. 이런 널 두고 어떻게 자주 웃지 않을 수 있겠어.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그런 상태인데도 날 만나러 와 준거야. 기뻤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뿐이었다. 차량이라도 부르려고 했으나 차는 불편하고 힘들다 해서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반은 잠에 든 모습이었다. 휘청 거리다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다. 생각 보다는 잘 걸었다. 나 어쩌면, 그녀를 조금 더 건강한 상태로 봐야 할지도.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 햇빛 아래에 있는 일이 많아 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가방에 달린 네임택을 보았다.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여자애라도 저런 걸 쓰는구나.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걸 쓸 것 같았는데. 거기에는 연락처와 학년, 반,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 우리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름으로 부른 적 없네.”
“그렇네요.”
그녀가 잠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 했다.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 하는 투에 잠깐 불안해졌다. 곧 안심 했다. 이제 확신이 섰으니까.
“내 이름 알고 있어?”
“알고 있죠.”
“내 이름이 뭐야?”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제 목소리로 부르는 이름이 듣고 싶어요?”
내 이름은 물론이고 인칭대명사도 빠져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제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떠올려도 불쾌하지 않을 이름이라면, 불러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저는 이름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어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 해 보면 이름은 깊은 것이에요.”
한 번도 생각 해 보지 않은 것이라 흥미롭게 들었다.
“제 이름이 안즈인 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없어요. 살구꽃을 닮은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일방적으로 명명 되어 서류에 올랐을 뿐이잖아요?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와 어떤 사이라고 생각하세요?”
잠시 생각 하다 자신 있게 말 했다. 이전이라면 불안했을 질문인데. 수천 장의 종이를 소비할 정도로 답을 내는 데에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 시켜 주는 사이.”
너무 싱거운가?
“아니면 연인?”
“그럼 그에 걸 맞는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용히 납득 했다. 그럼 나도 네 이름을 부르는 데에 조심해야 겠구나. 그에 걸 맞는 이름을 지어서 붙여 주기 전까지는. 그러자 그녀는 웃었다.
집까지 가는 길, 손을 꼭 잡고 갔다. 그녀가 붙잡혀 있었을 뿐이지만. 손끝이 차가워 몇 번이고 입김을 호 불었다. 조금 건강하게 보자는 건 취소할까? 얼음장 같았다. 걱정스러웠다.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만.
네 번째로 지나가는 어두운 골목. 그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녀가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있잖아.”
이젠 요구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이를 ‘연인’이라고 정의 할 수 있었다. 그런 사이라면, 부르는 데에는 신중해도.
“이제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어도 되지 않을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아끼면 안 되지 않을까.
그녀의 얼굴은 변화가 없었다. 내가 잘못 말 한 걸까? 그렇다면 화를 냈을 텐데. 마음에 안 드나?
“제게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지? 눈을 꼭 감고 이가 보일 정도로 입을 벌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푹 주저앉아 나를 안절부절 못 하게도 했다. 오래 웃었다.
“아하하, 정말 강아지 같아요. 방금 표정 어땠는지 알아요?”
그리고는 어떤 표정을 지었다. 눈썹은 약간 팔(八) 자. 눈빛은 초롱초롱해서 답을 원하고 있었고, 입꼬리는 웃음을 숨기지 못 해서 씰룩씰룩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얼굴을 구현 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너의 이 표정을 보아서 기뻐.
“만약에 꼬리랑 귀가 있었더라면 쫑긋 하고 양 쪽으로 격렬하게 흔들었을 것 같아요.”
내가 그런 얼굴을 했단 말이지. 웃겼다. 할 수 있구나? 할 날이 왔구나? 네 앞에서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
“정말……. 우리 학원 회장님께서는 강아지 같은 분이셨구나. 이거 다른 분들은 알고 계시는 걸까요? 나 혼자만 알긴 아깝네.”
말 하지 말라고, 장난으로 옆구리를 만졌다. 그녀가 악, 악 소리를 내며 옆으로 피했다. 그러다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역시 생각보단 건강한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은 참 좋지만, 그 흔한 말로는 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잖아요. 저라면 아껴 두겠어요.”
요리조리 잘 빠져 나가는구나. 그래도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웃었다. 네 덕에 많이 웃는다. 이러다간 몸이 아주 건강해지겠어. 그러면 좋겠다. 너와 함께 할 몸이라면 건강했으면 좋겠어.
내가 빤히 내려다보자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대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부위별로 하는 키스의 의미는 다 다르다고 하지. 온 몸에 키스를 하고 각각 다른 뜻을 부여해도 부족할거야.
“뽀뽀 더 할 거라면, 다른 사람의 눈도 생각하세요.”
퉁명스럽게 말 하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자연스레 어두운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으응, 졸린데.”
“그래도. 조금만.”
꼭 끌어안았다. 너를 두고 무슨 말을 할까. 르네상스 피렌체의 제일가는 시인이 되어 너를 찬양하고, 너에 대한 시를 죽는 날까지 매일 여러 편 써도 부족할거야. 사랑해. 귀여워. 사랑스러워. 예뻐. 순진해. 발랄해. 맑아. 빛이 나. 요염해. 고와. 청순해. 매혹적이야. 오밀조밀. 환상적이야. 천진난만해. 순수해. 천사 같아. 함축적이야. 반짝반짝. 나의 공주님. 부드러워. 깊어. 군림하는 나의 여왕. 아름다워. 너에게서 느꼈던 단어들. 너에게서 느낄 단어들. 다 모아도 널 설명할 수 없을 거야. 난 널 이길 수 없을 거야. 아, 어쩌지. 좋아서 어쩌지. 내 사랑. 아름다운 내 사람.
네 몸을 끌어안고 있기만 해도 행복했다.
“이번 주말에 영화 볼까?”
“영화요?”
“제인 마치가 나오는 <연인> 맞지?”
“응? 맞아요.”
“구해 볼게. 또 보고 싶은 거 있어?”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연인이 가장 보고 싶어요. 지금은 그 생각뿐이에요.”
연인. 우리 사이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일까. 내용은 모르지만 야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고집 할 정도라면 야한 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야. 그렇다면 꼭 구해야지.
끝까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눈여겨 둔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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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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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그녀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어서 나가고 싶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 고운 얼굴을 보고 싶었고, 아름다운 음색을 듣고 싶었고, 부드러운 몸을 느끼고 싶었다. 그간 내가 봐 왔던 것들이 떠올랐다. 교복보다 짧은 치마. 광대뼈를 물들인 화장품. 엉킨 속눈썹. 고개를 들어 드러난 턱선. 어둠 속에서 희미했던 얼굴. 바람에 말라버려 색의 흔적만 남았던 입술. 끝까지 잠기지 않은 셔츠 단추. 가는 목. 헐렁한 옷에 가려졌던 곡선. 취할 엄두도 내지 못 했던 것들에 입을 맞추었다니. 하. 생각하자니 웃음이 나와. 꿈만 같아. 너는, 너는 왜 이 모든 걸 허락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연습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토리와 와타루의 애정 섞인 투정을 받고 나서야 동작을 틀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차근차근 곱씹어 보니 확신이 강해졌다. 그녀가 내게 품고 있는 것은 호의 이상이다. 나와 같은 마음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늘 연습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자꾸 안무를 틀리는 나를 보고는 와타루가 오늘 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은 좋았지만, 나는 부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연습이 빨리 끝나면 그녀를 더 빨리 만날 수 있다. 덜 기다리게 할 수 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행복했다.
연습실의 뒷정리는 토리와 유즈루 군이 맡았다.
“미안해서 어쩌나.”
그러자 토리는 웃으며 말했다. 늘 열심히 하던 내가 자주 틀릴 정도로 많이 피곤한 것 같다고. 오늘은 괜찮다고. 유즈루 군이 조금 감동을 받은 것 같다만, 잘못 본 거겠지.
나는 짐을 챙기고 인사를 한 뒤 그 누구보다 먼저 연습실을 나왔다. 연습실을 나오자마자 복도 벽에 붙어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는 소녀가 보였다. 작은 한숨.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찌하려고. 방과 후라 다행이지. 나는 그녀를 깨웠다.
“많이 피곤했어? 그럼 무리해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는데.”
“아냐……. 추워서 그런 거였어요.”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두 어깨를 꼭 감싸고 일으켰다.
“추우면 따뜻한 곳에 뛰어들어야지.”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웃었다. 입을 내 귓가에 가까이 하며 속삭였다.
“품에 안기면 될까요.”
사랑스러워 피식 웃어버렸어. 이런 모습도 아름답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네 입에서 나오는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은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의 육체와 영혼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내 교복 재킷의 소매를 잡고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다.
“벌써부터 어두워 졌네요. 요즘은 날도 춥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했다. 치마도 긴 걸로 바꿔 입으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아하하, 웃었다.
“왜요. 걱정 되세요?”
“안 될 리가. 그리고 여성은 하체가 따뜻해야 한다고 하지 않니?”
“그렇긴 한데……. 뭐, 미래에 엄마가 될 몸이니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지요?”
“그건 아니야. ……아까 연습실 복도에 앉아 있었을 때 누가 지나가지 않았나 하고 철렁 했었어. 널 봤을까봐.”
“그 때 깨어 있었어요. 누가 왔다면 자세를 고쳤겠지.”
말을 마치고 후후, 웃었다. 생각할수록 날 닮은 웃음소리 같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점점 사람이 많아져 가고 있었다. 이쪽은 번화가로 가는 길이다. 내가 번화가에 가고 있냐고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카페가 생겼는데 마땅히 갈 사람이 없었노라고 대답했다. 듣자마자, 기뻤다. 그녀에게 선택 된 사람이어서. 전학 오기 전의 여자 친구들, 이사라 군을 비롯한 그녀가 프로듀스 하는 유닛의 남학생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다른 남학생들을 제치고 내가 함께 가게 되어서.
“아, 오늘 시간 없어요? 그럼 거절해도 되는데.”
없는 시간도 낼 수 있어.
내가 생각보다 널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그녀는 걸었다. 나도 걸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연애를 하게 되는 때가 온다면―마냥 막연하기만 했었다―내 일은 다 챙겨가며 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연인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겠다고. 그녀(혹은 그)가 떠나도 내 삶은 계속 될 테니 말이다(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데 이 짧은 삶 속에서 여러 번 느꼈던 바와 같이 내 마음이라고 해서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는 법은 없다. 우연인지, 그녀의 조용한 배려인지는 몰라도 그녀를 만나는 일이 내 일상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 무언가를 완수 못 한 적도, 있었던 일정을 깬 적도 없었다. 이게 배려라면 나는 감사해 해야겠지. 여러모로 많이 봤었다. 연인 때문에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해쳐가는 사람들을. 나는 그에 포함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녀는 어느 허름한 빌딩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곳이었다. 회색이었고, 조그마한 광고 스티커가 벽에 붙었다가 떨어진 흔적들이 많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좁고 누런색이었다. 이런 곳을 알고 있단 말이지. 누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안심하고 어떻게 다닐까. 다음에 좋은 곳에 데려가야겠다.
가려는 곳은 삼 층이라고,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그녀가 앞장섰다. 치마 속이 보일까봐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뒤에 사람이 있나 확인했다. 없었다. 다행이다.
삼 층에 도착했다. 그녀가 숨이 차서 벽을 짚고 조금 쉬었다. 거친 숨소리가 났다. 불현 듯 이전에 나누었던……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카페 내부는 굉장히 예뻤다. 흔히 말하는 공주풍. 유럽 왕가의 디자인을 어설프고 단순하게 흉내 낸 인테리어지만 예쁘고 잘 어울렸다. 이런 걸 좋아한다면 참고 해야겠다.
안내 받은 자리에 갔다. 신기했다. 한 일행이 방을 하나 씩 안내 받는 시스템이었다. 마치 호텔 같았다. 특이한 곳이었다. 중앙에 테이블이, 그 주변에는 커다란 소파가 있었다. 테이블에 비해 좀 큰 것 같은데. 한 사람이 눕기에 넉넉해 보였다. 빛이 적당히 들어왔고, 커튼이 있었다. 그녀가 가방을 소파 구석에 던져 놓았다. 그녀가 앉으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직각으로 앉았다. 그녀가 등받이에 편히 기대 있었다.
“이런 곳 처음인가요?”
그렇다고 했다. 주제가 있는 룸카페라고 했다. 늘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학원 근처에 체인점을 내서 오늘 처음 와 봤다고 했다. 멀리까지 가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직원이 들어와 메뉴판을 두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하고 나갔다. 그녀는 한 손으로 펼치고 손가락으로 죽 훑어가며 메뉴를 살폈다.
“한 사람당 음료수 하나와 다른 거 하나를 시켜야 해요. 전 정했어요.”
그녀가 메뉴판을 내밀었다. 대충 훑어보니 죄다 단 것들 뿐이었다. 이름은 알 듯 한데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 함부로 고르기 어려웠다. 그녀가 기껏 데리고 와 주었는데, 내가 디저트를 충분히 즐기지 못 한다면 이 무슨 무례한 일인가.
“어떤 게 맛있어?”
“전 먹어본 건 다 맛있던데. 혹시 딸기 좋아해요?”
“딸기야 맛있게 먹지.”
“초콜릿 케이크는요?”
“그것도 먹지.”
“그럼 딸기 스무디랑 초콜릿 케이크 어때요?”
다 단 거잖아.
“단 거 좋아하니?”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런 데 오면 역시.”
“그럼 그걸로 할게.”
그녀는 딸기 스무디와 초콜릿 케이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벨을 눌렀다. 왜 누르나 했더니 직원이 다시 왔다. 딸기 스무디 두 잔과 초콜릿 케이크 두 개를 주문했다. 네가 주문한 걸 나한테도. 정말 달겠다.
직원이 주문을 받고 나가자 그녀가 말했다.
“사실 여기서 딸기 스무디와 초콜릿 케이크밖에 안 먹어봤어요.”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는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너무 귀여운걸.
“딸기 주스 좋아해요. 초콜릿 케이크도 좋아하고.”
“그래? 그렇담 네게 그런 걸 선물 해야겠구나…….”
“엑. 그래 주시면 좋죠.”
웃으며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양 손으로 턱을 괴었다.
“따라 하는 거야?”
“전혀요.”
“그래?”
내가 손을 내리자 그녀도 손을 내렸다. 이만하면 됐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사랑스럽다.
“초콜릿 케이크 맛있어?”
“당연하죠.”
“어떤 면이?”
“초콜릿이 맛있는데, 그걸 바른 케이크가 어떻게 맛있지 않겠어요?”
으음,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별 시덥잖은 이야길 나누다 보니 주문했던 스무디와 케이크가 도착했다. 케이크는 그녀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에 반해 스무디는 컸다. 꽂혀 있는 빨대가 길어 보일 정도였다. 저건 두 손으로 들어야 할 거야. 근데 가격 차이는 고작 이백 엔. 의문이 생겼지만 둘 다 싼 가격이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포크를 들고 케이크를 잘랐다. 칼이 있으면 좋을 텐데. 스무디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고 달았다. 처음 밖에서 만났을 때 공원에서 사 먹었던 솜사탕이 생각났다. 그 때 그 솜사탕은 단 한 번 맛 봤다. 그녀를 한 번만 가질 것 같았다. 지금 이 스무디는 내가 다 마실 수 있다. 그녀도 그렇다.
그녀는 먹을 때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그녀는 스무디와 케이크를 곧장 해치웠다. 부족해 보였다. 좋아한다면서.
“더 주문하는 건 어떠니?”
“그러고 싶은데, 케이크 비싸요.”
벨을 눌러 케이크를 하나 더 주문했다. 그녀가 포크를 입에 물고 내게 물었다.
“더 드시게요?”
네가 먹을 것이라고 하자 고개를 숙이며 픽 웃더니 다시 들고 입을 열었다.
“잘 먹을게요.”
케이크가 다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없어져 버렸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스무디도 없는데. 조용히 내 걸 밀었다. 그녀가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내게 밀었다.
“다 마셔도 돼.”
그녀가 자신의 잔에서 빨대를 뽑아 내 잔에 넣었다.
“같이 마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사랑스러웠다. 너무 좋다. 네가 너무 좋아 웃는 것밖에 못 하겠다.
그녀의 빨대가 들어온 뒤 스무디는 빨리 없어졌다. 그녀는 내 쪽으로 가까이 와 시도 때도 없이 빨대에 입을 갖다 댔다. 잘 마셨다.
“더 주문할까?”
“추워요.”
그녀가 내 어깨에 픽 쓰러져 기댔다. 지금 입을 맞추면 딸기 맛이 나지 않을까? 그저 머리를 쓰다듬었다. 단정히 정돈 해 주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소파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따뜻해요.”
반 쯤 잠에 빠져든 목소리였다.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안 돼. 자지 마, 자지 마. 그러자 그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안자요.”
“정말이야? 곧 잘 것 같은데.”
“진짜 안자요.”
“정말?”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감겨져 있는데. 어디서 안 잔다고 그래. 후후, 귀여웠다. 이마에 입을 맞췄다. 달콤한, 나의 연인. 내 사랑.
“사실 졸렸는데 잠이 깼어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이야?”
“왕자님이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맑고 선명한 눈동자에 내 얼굴이 담겼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데. 그 창 안에 내가 비치는 모습이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 다 좋다.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팔을 더 꽉 조였다. 그녀를 내 쪽으로 더 가까이 했다. 그녀의 한 쪽 다리가 들렸다. 품에 완전히 기대 있었다. 내 허리를 팔로 끌어안았다.
“또 졸리려고 해요.”
“자면 안 돼. 그랬다간 우리 집에 모셔 갈 거야.”
그녀가 아예 픽 쓰러져 내 무릎을 벴다. 몸이 화들짝 놀랐다. 내 무릎에 누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둥근 선이 예뻤다. 머리카락을 넘기고 턱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 길고 짙은 속눈썹. 케이크 가루가 조금 묻어 있는 입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털어냈다. 입술 색이 더 잘 보였다. 오늘은 붉다. 살짝 움츠리고 있는 어깨. 들어간 허리. 제멋대로 자리하고 있는 치마. 재킷을 벗어 덮어 주었다.
“정말 모셔 갈 생각이군요.”
“그래 주면 좋지.”
그것 보다는,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따스하게 이 방을 비추는 햇볕도, 이 인테리어도, 이 방도,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너도 참 아름다워.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히, 하고 웃었다. 사랑스럽고, 좋아서 미칠 것 같다.
두 번째 고백. 너는 어떤 대답을 줄까.
“좋아해.”
그러자 내 어깨를 꼭 붙들고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뭐가 좋은지 저 혼자 웃었다. 다시 턱을 가볍게 잡고 입을 맞췄다. 그녀 쪽에서 두 번이나 입을 맞추어 주니 기뻤다. 그녀는 그 고운 음색으로 웃었고,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몸에 닿는 건, 그 깊이가 가볍든 무겁든 달콤하기만 했다.
계산을 하고 그녀를 집 앞에 데려다 줄 때 까지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집으로 가는 길은 더더욱 그렇다.
어둡고 좁은 골목 앞에서 다시 말 했다.
“정말, 좋아해.”
그녀는 웃으며 내 손목을 붙잡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이 시간에도 어두운 곳이다. 그녀는 까치발을 서고 내 얼굴을 꼭 붙잡아 입을 맞추었다. 혀를 슬쩍 밀어 넣고, 나를 바라보다 웃고 이마를 맞댔다. 그대로 다시 입을 맞췄다. 허리를 끌어안자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 때와 같다. 바닥에 담배꽁초가 있었고, 이 골목은 으슥했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입으로써 탐했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널 사랑했고, 지금 너는……. 그녀가 귀를 깨물어 생각을 멈췄다. 내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길게. 살며시 떼고. 가볍게 몇 번. 그리고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서점에서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매춘부는 몸은 주어도 입술은 내주지 않는대요. 입술은 진심을 의미하나 봐요. 왜,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면 입을 잘 맞추지 않는다면서요. 아, 이런 말하기에는 이곳이 너무 점잖은 곳인가.’
다시 한 번.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면 입을 잘 맞추지 않는다면서요.’
이게 네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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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5
감상은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이번도 고맙습니다!
015
눈치 챘을까?
조용히 널 지켜보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이전이라면 내게 무슨 권리가 있어, 하고 실행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거쳤을 텐데.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녀의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관찰은 내가 그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부러 갈 때에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하러 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오늘은 조금 피곤한데.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서. 몸을 이끌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오늘따라 늘 다니는 학교는 넓기만 했다. 새삼 느껴졌다.
내가 매점에 가고 있을 때, 어떤 여학생이 나를 살짝 밀치고 재빠르게 들어갔다. 스치는 뒷모습으로도 알 수 있었다. 너였다. 능숙하게 오늘 들어온 물건들을 쓱 훑고 이름을 불렀다. 곧이어 과자와 빵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너 그거 다 먹을 수 있는 거니?
오후 수업 중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거닐었다.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 케이토는 내가 돌아다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내게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새삼. 우린 참 마주치기 힘들다. 학년도, 속해 있는 유닛도 달라서 그런가. 그러니 빨리 모셔 와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피네의 프로듀서가 된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뿌듯했다. 만약 진짜였다면, 우린 꽤 잦은 만남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는데. 자주 마주쳐서, 물질로 그녀를 묶어 두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연습실에 남아서 레슨을 도와주고,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회의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자, 유닛은 그렇다 치자. 다른 학년은? 우리가 타고 난 나이를 탓하고 싶지 않으니 유급을 하지 않은 나를 탓해야 할까? 후후, 그러게. 난 병결로 많이 빠졌는데 말이지. 하지만 정말 유급 했더라면 너에게 떳떳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아. 누군가를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네. 뭐, 상관없으려나?
결국은 만나지 못했다. 역시 나이가 문제인가?
수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 그녀와 단 둘이 있을까 생각했다. 영 시간이 나지 않는다. 학생회의 남은 일을 처리하고 바로 연습실로 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귀여운―앞으로 이 형용사는 그녀에게만 붙이기로 했다만―토리와 유즈루 군이 학생회실에 있다는 것이다. 마침 와타루는 오늘 연극부에서의 볼 일이 있다고 하고. 학생회실에는 이사라 군도 있으니까, 어쩌면……. 뒷문이 벌컥 열렸다. 시끄러운 소리였다. 모리사와 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리사와 군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뭐?
뒷문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옷감을 한 가득 안고 왔다. 모리사와 군이 껴안으려 하자 늘 있던 일이라는 듯이 재빠르게 피해 뒤로 물러섰다. 옷감 때문에 문 여는 소리가 조심스럽지 못했구나.
“키류 선배는요?”
“키류는 B반이다.”
케이토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꽤 거슬렸었나. 나는 책상에 앉아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나가버렸다. 아, 차라리 이곳에 나 뿐이었더라면. 세나 군도, 모리사와 군도, 하카제 군도, 심지어는 케이토도 없었더라면.
모리사와 군의 포옹을 거절해 주어서 기뻐.
정규 수업을 마치고 곧장 학생회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사라 군뿐이었다.
“이사라 군. 오늘 트릭스타 연습이 있니?”
그러자 이사라 군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런, 곤란한데. 그렇담 그녀는 먼저 가 버리지 않을까. 내 표정이 썩 좋지 않았나. 이사라 군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을 꺼냈다. 오늘 그녀는 늦게까지 도서실에 있다고. 어쩐 일로 도서실일까, 싶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나는 이사라 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토리와 유즈루 군, 케이토가 왔다. 일을 하다 창밖을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문득 내 마음을 전했을 때가 생각났다. 웃음이 나왔다. 그 땐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아주 안정적인 건 아니다만. 그 때에 비하면 폭풍우와 잔잔한 물결이다. 도서실이 있을 방향을 어렴풋이 바라보았다. 벽으로 막혀 있었다. 이 벽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널 볼 수 있었을까?
문 밖에서 미세하게나마 발소리가 들리면 서류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도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혹시나 네가 찾아올까봐. 내가 이상해졌다. 문을 자주 쳐다보는 것을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이 정도면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닌가. 나를 바라보는 케이토의 눈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웃어 주었다.
“잠시 실례할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도저히 그녀를 만나고 싶어 못 참겠다. 케이토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시할 수 있었다. 토리는 빨리 다녀오라고 했고, 이사라 군은 어딘가 찜찜한 얼굴이었다.
책상에서 일어나 걸어 나가기까지 일 분. 십 보. 학생회실을 나오고 나서의 일 분. 구 보. 당나라 시인의 이름은 두보. 넌 날 시인으로 만들어. 점점 멀어질수록 내 걸음은 빨라지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
만나고 싶어. 보고 싶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서실에 도착했을 대 나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문으로 엿보니 그녀는 책을 한 아름 들고 있었다. 그녀보다 키가 큰 어느 남학생이 그 책을 들어다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그녀가 웃으며 입을 움직였다. 고맙다는 인사겠지. 다른 사람에게 웃어주는 모습도 예뻤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곧 책을 둔 책상에 앉았다. 바짝 붙어 있었다. 기분이 언짢아졌다.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가깝게 앉아 있는 걸 보고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그녀는 오른손으로는 펜, 왼손으로는 책을 펼치고 이것저것 그려가며 남학생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녀가 펜을 놓고 의자에 기대자 그 남학생과 팔이 닿았다. 그러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조금 떨어뜨렸다. 하마터면 정말 질투 할 뻔 했어.
두 사람 사이에는 무안한 기색이 흐르는 것 같았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만큼 확신이 생겨서겠지.
그 소년이 책을 한 아름 가지고 서가에 들어갔다. 나는 지켜보는 것에서 더 나아갔다. 도서실로 들어갔다. 다가가는 나를 보자 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띠워 내게 보냈다.
“어쩐 일이예요? 이사라에게 들었어요. 오늘 학생회의 남은 일을 마쳐야 한다면서요. 오셔도 되는 거예요?”
나는 그녀 옆에 서서 대답을 했다.
“잠깐 나온 거야.”
“으응, 그럼 안 돼요. 어서 돌아가서 일을 마치고 오시는 건 어때요?”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 아니, ‘한결’ 정도가 아니다. 살가웠고, 부드러웠고, 상냥했다. 첫 만남을 하기 전 태도와 대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내게 잠시 보이던 무관심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호의 이상이라고. 내 입맛에 더 좋은 쪽으로 맞추자면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혼란이 깃든 것 같지만 중요하지 않다.
“일 다 끝나면 뭐 해요?”
“연습 하러 가야 해.”
“몇 시에 끝나요?”
“두 시간은 잡아야지.”
그녀는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았다. 눈을 조금 찌푸렸다.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뒤라고 해도 도서실 문이 닫혀 있겠네요.”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녀가 기다린단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혹시나 기다릴 마음이 있을까봐 하고.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 했다. 어떻게 조정을 해야 그녀가 가장 덜 기다릴까. 그녀에게 최대한 맞추어 주어야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그나마 덜 염치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해, 내가 널 기다려야 하는데.
그녀가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시계를 응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기다려 드릴까요.”
“응?”
갑작스러웠다. 사실은 바라던 말을 그녀가 내뱉어 주어서 기뻤다. 확신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내 마음을 바라보았다.
“바쁘시면 말고요.”
어깨를 으쓱 하며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고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럼, 염치없지만 오늘만 부탁해도 될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미안해하려거든 하지 마세요. 제가 늦은 적도 있잖아요?”
네가 늦은 적이 있다. 단순히 나보다 약속 장소에 늦게 나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는 문학이야. 수필로는 담을 수 없는, 소설로 풀어내기엔 너무 긴. 그래서 함축적인 시가 되는. 네가 늦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정말 약속 장소에 늦게 나왔다는 것? 아니면, 이제 나를 좋아하고 있어서. 마음이 맞닿는 것이 늦었다는 뜻일까. 내 서투른 해석들은 너무나 이른데도 그것이 정설인 양 내 마음을 차지했다.
“아무튼, 어서 돌아가서 일과 연습을 끝내고 오세요. 꽤 오래 계신 것 같다만.”
“알았어.”
“연습실 앞에서 기다릴게요.”
앉은 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말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어깨를 꼭 붙잡고 도서실을 나왔다.
4361자
쓰다가 두보의 시를 찾아봤는데 엄청 좋더라고요 새로운 존잘님...
그리고 에이안즈 다 쓰면 수정하고 내용 더 추가 해서 회지를 낼까...? 낼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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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4
감상은 늘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14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 홀로 있을 너. 아니, 홀로 있어야 할 너. 단 둘이서 만나고 싶었다. 이제 네 연락처를 알았으니, 기기를 사용해도 되건만. 나는 아직 직접 네 얼굴을 보고 싶다. 기기는 너를 만나기 위한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회실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 네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너는 아름다워. 네가 드나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문을 열고, 오른발을 내딛었다. 오늘 못 보던 운동화를 신었네. 완전히 들어오자 고개를 살짝 돌려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닫고, 잘 닫혔는지 확인했다. 너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구나.
문고리에서 손을 떼자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신감 있는 당당한 발걸음. 발소리. 운율. 살짝 나부끼는 잔머리들. 내게서 떼지 않는 시선.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받아 주었다.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어쩐 일로 부르셨어요?”
“네가 보고 싶었어.”
그러자 그녀가 하, 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감고 이가 보일 정도로 입을 벌려 웃었다. 가리지 않은 얼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웠다. 그녀의 눈이 부드럽게 접혔다. 곡선이 어색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부를 거예요?”
“내가 갈까?”
그녀가 좀 전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어디가 즐거운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웃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즐거워졌다.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고 팔에 가두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헝클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정리 해 주었다. 그녀가 웃었다. 이곳에 들어와서는 줄곧 웃기만 한다. 사랑스러워. 꼭 끌어안아 입을 맞추고 싶다.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형광등 불빛 때문일까.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오늘 네 입술은 오렌지색. 고개를 숙이더니 내 가슴에 머릴 기댔다.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어떤 언어가 널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긴 학교인데, 이래도 돼요?”
내가 감은 눈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였다.
“내가― 여기가 밖이면 이해를 할 텐데. 안 돼요. 안 돼.”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나를 밀어냈다. 나는 팔을 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행동을 취해도 넌 아름다워.
“그럼 나갈까?”
“나가면. 나가면 어떡할까요?”
그녀는 후후, 웃었다. 웃음소리가 익숙했다. 내 웃음소리와 비슷했다.
“네가 영화를 좋아한대서, 찾아봤어.”
“응? 무엇을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천진난만했고, 맑았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러워. 사랑스러워. 네게 이 말이 아깝지 않아.
“옛날 영화 DVD라던가, 그런 걸 볼 수 있는 장소.”
“어머, 정말요?”
순수한 기쁨이었다.
“어떤 영화가 있어요? 꼭 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연인.”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롤리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야한 거 아니야?”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그게 중요한가요?”
귀여워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외간 남자와 함께 야한 영화를 보겠다는 거야?”
그러자 그녀가 심통을 냈다. 눈썹을 찡그리고 장난스러운 원망이 담긴 얼굴이었다. 사랑스러워.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정말이지, 그런 말 말아요? 응?”
“화났어?”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당연히.
“응. 화났어요.”
얼만큼, 하고 물었다. 그녀가 팔을 양쪽으로 벌려 자신이 화가 난 정도를 가늠했다.
“이만큼.”
후후, 귀여웠다. 소리 내어 웃으며 그녀를 깊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두 손이 내 등에 닿는 게 느껴졌다. 손끝부터 하나하나,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를 어떻게 할 거예요?”
웅얼거리는 목소리. 투정일까.
내가 입을 열어 대답하려던 찰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럼 당연히 가야지. 아, 못 들은 걸로 하세요.”
나답지 않게 웃었다. 크게 웃어버렸다.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웃어버렸다.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어쩌면, 너는 말 한 마디로도 날 이렇게 웃게 만들까. 네 새로운 장점을 발견했다. 아니, 아니야. 이 표현은 아니야. 너를 빛내는 또 하나의 다이아.
“너는…….”
그녀의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내게 있어서 달콤한 연인이야.”
지금 네 태도는, 네가 나를 혐오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달콤했다. 꿈같을 정도로, 솜사탕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게 느껴질 정도로 달콤했다. 네가 그 사람이 맞는 걸까? 내 고백을 듣고 너 자신을 동정한다고 말했던 너일까? 혹시 누군가가 나를 혐오한 너와 달콤한 너를 바꾸어 놓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날 혐오한 너는 어디에 갔을까.
“제게 연인이란 호칭이라니. 황송하네요.”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 입맞춤은 스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그러니까 연인을 봐야죠.”
“결론은 그거야?”
“하지만 보는 걸 최대한 미뤘으면 좋겠어요. 이제부터 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쌓아 나갈 거니까요.”
알았다고 대답하며 다시 입을 맞췄다. 왼손으로 턱을 벌리고 혀를 밀어 넣으려던 찰나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그것 말고요.”
“그럼?”
그녀는 나를 밀쳐 의자에 앉혔다. 생각보다 센 힘에 압도 된 것 같았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턱을 조금 들고,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다리를 벌려 그대로 내 무릎 위에 마주보고 앉았다.
말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내 넥타이를 풀었다.
내가 안 좋은 것을 한 걸까.
그녀가 한 손으로 내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쳤다. 하나, 둘. 바깥 공기가 쇄골에 부딪혔다.
아니야, 이건 꽤 좋다.
소리가 이곳에서 나가지 않도록 내 입을 막았다.
275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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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3
***15금 소재가 있습니다***
리트윗, 마음, 감상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13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 어두운 골목을 지나갔다. 지난 일이 떠올랐다. 이전보다 더 깊은 입맞춤을 했었던. 이전에는 닿지 않았던 곳에 닿았던. 그 때를 생각하니 다시 열기에 사로잡히는 것 같기도, 조금 부끄러운 것 같기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처음이 어렵지 그 뒤는 쉬운 법이다. 그녀가 빨리 받았다.
“그 어두운 골목 지나고 있어.”
[거기요? 아…… 알았어요. 문 앞에 나가 있을게요.]
전화가 끊어졌다. 길을 되짚어보며 그녀의 집을 찾아 갔다. 골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으니 주택이 나열된 길이 나왔다. 오른쪽 중간 즈음 되는 곳에서 그녀가 팔로 자신을 감싸 안은 채 서 있었다. 얼굴을 붉힐 정도로 짧은 반바지, 체형을 감춰 버리는 커다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운동화는 맨발로 꾸겨 신은 채였다.
“많이 기다렸니?”
“아뇨. 딱히.”
“그래도 추워 보이는 걸.”
그녀가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바로 왼쪽 벽에 텔레비전이 붙어 있었다. 벌써부터 텔레비전이 나오나? 그녀는 어느 곳도 들리지 않고 가장 안쪽 방에 들어갔다. 벽 한 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침대와 켜져 있는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제 방이에요.”
여자아이의 방이란 어떨까. 책상은, 생각보다 지저분했고 함께 붙어있는 책꽂이에는 세계문학전집이 꽂혀 있었다. 저 전집은 국내에서도 꽤 많은 수를 자랑하는데, 그의 반도 없었다. 하긴, 책꽂이에 전권을 꽂을 없겠구나. 책상 위에 얹어져 있는 것들은 과자봉지와 펜 몇 자루, 수첩 따위였다. 입술에 바르는 걸로 보이는 손가락보다 짧고 얇은 뚜껑이 있는 막대도.
“자, 제가 보고 싶어서 오셨죠. 이제 보셨어요. 다음은 뭘 하실래요?”
컴퓨터 앞에 앉아 의자를 싹 돌려 앉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작은 의자를 펴 주고는 앉으라고 했다. 이런 것도 있구나. 새로웠다.
“아직 영화 다 안 봤는데. 같이 보실래요? 거의 다 끝나가지만.”
그녀의 말에 의자를 끌고 컴퓨터 앞에 가 앉았다. 그걸로 내가 이 작은 영화관의 관객이 되겠다는 의미가 전달이 되었는지 그녀는 말없이 영화를 재생했다.
정말 거의 다 끝나갔다. 두 주인공이 만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결혼 허락을 받았다. 이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노골적인 표현 없이 필요한 말과 어투의 덤덤함만으로 사랑을 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분을 가라앉힌 책을 읽고 나서 밝은 영화를 보니 나아졌다. 우울한 사랑보다는 행복하게 끝나는 사랑이 더 반가웠다.
내 왼쪽에서 열중하며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너는 평생을 함께 하게 될 엘리자베스 베넷일까, 아니면 영원히 놓쳐버릴 마르그리트 고티에일까.
그녀는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을 껐다.
“부모님은?”
“계셨다면 오시라고 못 했을 거예요.”
“언제 오시는데?”
“두 분 다 오늘은 안 오실 거예요.”
“……그래?”
그녀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오른손으로는 폴더를 뒤지고, 왼손을 뻗어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면.
“영화 보실래요?”
“응? 뭐 있는데?”
그녀가 제목을 보여주었다. 내가 말했다.
“이거 야한 거 아냐?”
“소설 안 읽어 봤죠?”
소설도 있구나. 그녀가 보여준 영화는 롤리타. 21세기가 되기 직전에 나온 영화였다. 그 이름을 적은 가타가나가 돋보였다. 소위 공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여자 내지는 소녀들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어원이에요.”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과자 봉지를 두 개 가져 왔다.
“이런 거 먹어요?”
먼저 개봉해 두었던 과자 봉지에 입을 대고 남은 과자를 마셨다. 텅 빈 봉지는 곱게 쪽지를 접었다. 양손 세 손가락만을 써서 접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쪽지가 된 봉지는 치워 두고 새 과자를 뜯으려 했다. 잘 뜯지 못하고 몇 번이고 다시 잡기에 내가 뜯어 주었다.
“제가 조금 뜯어 놓아서 이렇게 잘 뜯긴 거예요.”
그래, 그래. 나는 그녀를 귀여워하며 웃었다. 과자 봉지를 주었더니 이번엔 아예 손도 대지 않은 다른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번에도 조금 뜯어 놓지 그래?”
“이 뜯어놓은 과자 먹을 거라 안 돼요.”
얼굴은 덤덤하다. 마치 집중 되지도 않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읽는 얼굴이다. 그런데 말 하는 내용은 앙증맞기 그지없다. 어리광 부리는 아이 같은 면이 있다. 아. 이런데도 사랑해도 될까? 이렇게 어린걸.
내가 과자를 뜯는 새에 그녀는 영화를 재생했다.
잔잔한 배경 음악과 함께 손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렇게 운전을 하면 분명 경찰이 뒤따라 올 것이라 생각했다. 롤리타, 라는 단어와 함께 과거 회상이 시작되었다.
주인공은 하숙집에서 만난 하숙집 주인 과부의 딸에게 반했다. 이름은 돌로레스 헤이즈. 이 소녀가 롤리타일까. 물을 뿌리고 있는 푸른 잔디밭에 엎드려 잡지를 보고 있는 촉촉이 젖은 소녀.
……조금 보다 보니 몰입감이 있었는데, 돌로레스가 험버트―남자주인공의 이름이다―의 무릎에 앉아 있는 장면은 보기가 힘들었다. 창문 사이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그녀가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신문의 카툰을 읽는다.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손끝으로 매만지는 허벅지. 흔들거리는 의자. 신문에서 점점 떠나가는 시선. 숨소리. 이 모든 것이 그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찍어 놓았는지. 적나라한 묘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만 보면 안 될까?”
“어? 왜요?”
“너무…… 민망하지 않아?”
“아, 알았어요. 끌게요.”
내 요청에 그녀는 영화를 껐다. 그 영화도 벌써 한 시간이나 봤구나. 이다음 장면이 무엇일지, 얼추 맞추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영화 잘 만들었어요. 캐릭터를 잘 담아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끌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왼손으로 과자를 집어 먹고,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를 굴렸다.
“영화 좋아하면, 나중에 보러 갈래?”
“요즘 나오는 건 별로예요.”
그럼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도 따로 찾아야 할까. 아니면 DVD를 빌려와야 하나. 마땅히 볼 장소가 없다.
“이 영화 나중에 볼 거예요?”
“글쎄…….”
“보거든 이 남자주인공은 절대 본받으면 안 돼요. 문장력이라면 몰라도, 사람은 절대로.”
진지한 얼굴로 당부하는 그녀가 귀여워서 웃으며 물었다.
“왜?”
“어머니를 잃은 아이를 지켜주지도 않고, 연인으로 여기면서 동등한 위치에 있으려 하지도 않고, 성인 남자로 힘을 행사하려고 하니까요.”
그녀의 말을 반은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말을 계속 이었다.
“정말 파렴치한 사람이에요. 결국 잃어버려요.”
“무엇을?”
“롤리타.”
“그래? 그럼 끝까지 보고 싶지 않은걸.”
“왜요?”
방금 전 내가 네게 했던 물음을 너도 내게 해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아…….”
그러자 그녀는 말없이 웃었다. 오른쪽 어깨에 걸쳐져 있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정리하고 왼쪽 발을 의자 위에 올렸다. 발뒤꿈치가 의자 끝에 간신히 걸쳐졌다. 그대로 팔로 감싸고 무릎에 머릴 기댔다. 오른쪽으로 고갤 돌리고 날 바라봤다. 한 쪽 눈썹은 찡그리고, 한 쪽 눈썹은 치켜 올린채로. 오른쪽 목이 드러났다.
“잃을 사람이 있나요.”
말꼬리가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지 않는 물음이리라. 이 말로 말미암아 그녀에게 확신을 가졌다.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아니라고.
네가 무방비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설령 나를 막을 준비가 되어 있더라도 날 이길 수는 없겠지. 세간의 눈으로 너는 조심성이 없는 여자아이, 나는 오늘 줘도 못 먹는 바보가 되겠지. 확실히, 네 육체는 손가락 끝 하나조차도 매혹적이다. 하지만 우리 그렇게 남자. 조심성 없는 여자아이와 줘도 못 먹는 바보로. 이 불편하고 한없이 불리한 이름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네 사랑이었다. 이걸 얻기 위해서 나는 당장의 욕구도 참아야 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아.
“처음이 어렵죠?”
도저히 네 속을 모르겠다.
네 손목을 잡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앉아있었던 의자가 뒤로 자빠졌다. 쿵 소리가 났다. 그 누구도 의자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가련한, 작은 의자. 널 침대로 내던졌다. 옷이 몸을 따라가지 못했는지, 영 불편해 보였다. 티셔츠가 유난히 헐렁해 보였다.
“……무언가를 하시려거든 내려오세요. 여긴 잠옷만 입고 올라오니까.”
정신이 들었다. 귀여웠다.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자주 웃으시네.”
“후후, 귀여우니까 그렇잖아.”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밑에 기댔다. 나도 그 옆에 앉았다. 그녀가 발로 방문을 살짝 닫았다. 힘이 들어가 빳빳하게 서 있는 발도 예뻤다. 그런 것조차도 나를 유혹했다.
그녀의 탓을 할 생각은 없다.
발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눈치 볼 것도 없이 입을 맞췄다. 두 손으로 고운 얼굴을 붙잡아 가까이 했다. 그녀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아주, 아주 작은 소리가 짧게 여러 번 나왔다. 내가 닿았던 곳들에 다시 입을 맞추고 싶었다. 거슬리는 머리카락들을 걷어내고 네 몸에 얼굴을 묻었다.
둘 뿐인 곳. 여과 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 그 소리가 나를 감쌌다. 나는 더 대담해질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전함이 보장 되어 있었으니까.
다시 볼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조금은 몽롱하고 도취되어 붉은 얼굴이 예뻤다. 손을 옮겨 어깨를 붙잡았다. 혀로 목을 따라 선을 그었다. 목에 한 줌의 욕정을 풀고 난 뒤 더 거침없어졌다. 너를 탐할 때 내 손은 여태 네 얼굴과 어깨만을 안았다. 오늘은 괜찮겠지. 손을 조금 더 내렸다. 닿지 않았던 곳에 닿으니 네 몸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더 달아오르고, 더 뻣뻣해지고, 더 커지는. 눈을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러운 감촉이 손에 묻었다. 자릴 잡고, 왼손 손가락을 가볍게 왼쪽으로 돌렸다. 가장 높은 곳이 만져졌다.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네 숨이 들렸다. 숨소리가 고르지 못했다. 돌린 손가락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대로 덮어 움켜쥐었다. 손에 가득 담겼다.
여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옷은 사랑하는 남자의 손이랬지. 그 말이 네게도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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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2
리트윗, 마음, 감상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12
침대에 앉아 책을 읽었다. 제목은 <춘희>. 그녀와 함께 서점에 갔을 때 샀었던 책이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이라고 한다. 창부였던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사후, 그녀의 물건들이 유품 경매에 들어갔다. 서술자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책 한 권을 사 들인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찾아와 그 책에 얽힌 자신과 마르그리트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아르망 뒤발. 처음엔 아르망의 마음을 몰라주었지만 후에 사랑을 위해 윤락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러나 아르망의 아버지가 마르그리트를 찾아가 아르망과 헤어져 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그를 떠났고, 죽는 순간까지 아르망을 떠올렸다.
인터넷 검색과 내가 읽은 내용을 섞어 대강 정리해보자니 이런 내용이 나왔다. 앉은 자리에서 손가락 두께만한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고 내 옆에 두었다. 침대에 누워 마른세수를 했다.
이런 표현이 웃기지만, 그녀와 내 사랑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그들의 사랑에 빗대어 보자면, 마르그리트가 아르망의 마음을 몰라주는 데에 있는 걸까. 그렇다면, 후에 그녀가 나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걸까? 내 주변의 누군가가 그녀에게 나와 헤어져달라고 할까? 이건 너무 멀리 갔다.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만.
우리가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를 영원히 놓쳐버린 아르망이 되지 않길. 나의 마르그리트가 되지 않기를.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기분이 가라앉은 채 그녀 생각을 하니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확인을 받아 놓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직 조심스럽게 행동 해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있고, 우린 서로 합의된 연인 사이도 아니다. 그녀는 나의 연인이지만, 그녀에게는 아닐 것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그리워할까. 그의 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어쩔까. 전화라도 걸어야 할까.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하지만 연락처를 몰라서, 목소리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 하는 게 즐거워서, 같이 있을 땐 그 어느 것도 필요가 없어서……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어떻게 연락처를 모를 수가 있냐고 질책하다가 정신이 들었다. 그녀와 나는 그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의 관계가 아니다.
그래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어도 좋다. 수업 시간에 문학 지문을 읽는 소리라도 듣고 싶은데. 어쩌지. 참았다가 나중에 물어볼까. 아니면 케이토를 통해서?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케이토의 번호를 띄워 두며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전파가 안 터질까 걱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연결이 되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케이토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케이토에게 혹시 그녀의 번호를 아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모른다.’ 하지만 이사라 군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케이토의 전화를 끊고 이사라 군에게 연락했다. 이사라 군은 내키지 않았을 테지. 그래도 번호를 내 주니 기뻤다. 자, 이제 그녀의 연락처가 있다. 케이토의 번호 대신 그녀의 것을 띄워 두고 고민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여섯 시.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가량이 지나면 우리가 헤어졌던 시간과 엇비슷할 것이다. 이런 시간에 전화를 걸어도 되려나? 혹여 싫어하며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을까? 그러자 두려움이 몸을 감쌌다. 전등을 켜 두었는데도 주변이 새까매지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무관심한 태도와 이전의 경멸하던 태도. 둘 중 어떤 것이 더 괴로울까.
뭘 하든 괴로울 것이니 하고 싶은 걸 하고 괴로워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한정된 삶에서 느낀 건 생각한 만큼 괴로운 일도 드물다는 것이었다. 설마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할까. 고운 네 미소를, 예쁜 음색을, 너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이 세상을 모두 떨쳐 버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할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스스로를 타이르며 통화 연결음을 들었다. 알 수 없는 노래. 일본어는 아니다. 유럽 언어가 아닐까.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노래는 꽤 신났다. 어떤 가사를 담고 있을지 추측하려던 찰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귓가에 감겼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사라에게 들었는데, 혹시…….]
그녀 쪽에서 먼저 내가 말 할 무언가를 던져 주어서 나는 입을 열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여보세요?’만을 말했더라면, 계속 침묵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야.”
[어쩐 일이예요?]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느낄 수 있는 것은 두근거림. 설렘. 어쩜 이렇게 예쁠까. 나 때문이라면 기쁘겠지만, 나 때문이 아니어도 이런 목소리라면 얼마든지 기쁠 것이다. 다른 남자를 제외하고.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그래요? 흐음…….]
“기분이 좋아 보이네. 네 목소리에서 느껴져.”
이유가 알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그녀의 기분이 좋으리란 보장이 없는데도 이 예쁜 목소리가 나로 인해 내는 거라고 듣고 싶었다.
[그래요? 영화를 보고 있어서요. 모처럼 기대하던 영화라.]
“어떤 영화?”
[오만과 편견.]
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새로운 공통점이 생겨 기뻤다.
“그거 보고 있는 거야?”
[네.]
“그런 거 좋아해? 옛날 거 말이야.”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나 옛날 영화 좋아해요.]
나중에 보여주겠다는 말을 삼켰다. 무언가라도 쥐여 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정적이 흘렀다. 키보드가 탁탁 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컴퓨터로 보고 있었나 보구나. 나와의 통화가 지루한 것일까. 아니면 별 의미 없는 손장난.
너는 내게 한 편의 시 같아서 네가 보이는 언행이나 몸짓 하나하나를 보고도 몇 배의 해석을 내놓아. 시어처럼 아름답고, 고유한 운율이 있는 너. 눈으로 읽을 때와 직접 겪을 때 판이하게 다른 너.
“네가 보고 싶어.”
지금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한 말이었다. 나는 지금 바로 너를 만나고 싶어.
“당장 만나고 싶어.”
보고 싶단 말이 솔직하다는 거 취소하련다. ‘만나다’와 ‘싶다’ 두 단어가 들어간 이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한다.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적절한 표현도 없을 거야.
[오실 수 있으면요.]
귀를 의심했다는 표현은 진부한데도. 나는 이미 그녀를 보고 내 언어가 극히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말?”
[오실 수 있으면요.]
“갈게. 갈 거야.”
[집 앞에 도착하시면 연락 하세요.]
그녀는 내게 더 할 말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완전히 끊어져 대기화면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말 가도 되는 걸까? 정말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연인의 집에 찾아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은 것도 설렐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허락 해 주었다는 게 기뻤다.
이렇게 즐겁게 나갈 준비를 한 적은 거의 처음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늘 병원, 학교, 아니면 집안의 이런 저런 일로 나가는 외출뿐이었으니까.
잠깐 볼 일이 있어 나갔다 온다는 충분하지 않은 말을 던져놓고 나왔다. 돌아오면 꽤나 피곤해질 것 같지만 그걸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가 만나고 싶었다. 가능한 빨리.
기뻤다.
그것도 아주.
350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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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1
***15금 소재가 있습니다.***
리트윗, 마음, 감상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11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을 감싸 안았다. 그녀가 꿈속에서 지나갔다. 그 날처럼, 나의 공주님으로 그녀는 내 품에 안겼다. 이 몸 안에서 손을 모으기도 하고, 뒤를 돌기도 하고, 나를 올려다보다 내 가슴에 이마를 대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사소한 몸짓조차도 사랑스러웠으니, 이제 그녀의 존재는 내게 있어선 사랑스러움 그 자체인가. 품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온기에 잠이 깼다.
등교는 평소와 같았다. 늘 만나던 사람들과 늘 하는 인사말을 나눴다. 수업도 늘 같았고, 연습도 늘 같았고, 내 주변 풍경도 평소와 같았다. 나는 내가 혼자 있길 바랐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라면 그녀를 곱씹을 여유가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품에 그녀가 있었다는 것을 느끼려면, 아무도 없어야했다.
정규 수업 시간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길 고대했다.
방과 후, 그녀의 반 앞을 찾아갔다. 텅 빈 교실 속에는 잘 정돈된 책걸상이 있었다. 해가 질 기미가 보이는 빛이 들어왔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창문을 닫아 잠그는 뒷모습이 보였다. 오른발은 까치발, 왼발은 살짝 들어 높은 곳에 있는 창문을 잠그려고 애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되진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 잠그는 것을 도와주었다. 작은 비명, 하지만 곧 익숙해졌는지 팔을 뻗어 가볍게 잠그고, 자신을 붙잡아 준 손가락을 매만졌다. 땅에 발이 닿고 나서도 한참 손을 잡고 있었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녀가 뒤를 돌았다.
“무슨 일이예요?”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감정을 알아보려고, 그녀의 표정 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도 미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태도가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표정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고, 무슨 일이냐 묻는 말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나는.
“오늘 잠시 시간을 내 줄래?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그녀에게 시간을 내 준 대가를 쥐어주었다. 그녀는 손에 잡힌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서점. 그녀와 꼭, 꼭 함께 가고 싶었다. 마땅한 이유는 없지만 그녀라면 이곳이 잘 어울릴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그녀는 꽤 잘 어울렸다. 마음을 붙인 곳이 없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빴지만. 만화 코너에 갔다가, 시집 코너도 가고, 판타지 소설 코너도 갔다. 그녀의 발걸음이 머무른 곳은 고전 문학 코너였다. 그녀는 눈높이에 있는 책을 한 권 꺼냈다. 꽤 예전에 나온 것처럼 보이는 세계문학전집. 제목은 <춘희>.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
“이 책 읽어보셨어요?”
그녀의 눈이 빛났다. 이 책에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장소에?
“읽어본 적은 없지만,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소재는 마음에 들어요. 매춘부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해요. 이게 뒤마 필스가 말 하고자 하는 주된 바는 아니겠지만요.”
그녀는 책을 한 번 훑어보고 제자리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매춘부는 몸은 주어도 입술은 내주지 않는대요. 입술은 진심을 의미하나 봐요. 왜,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면 입을 잘 맞추지 않는다면서요. 아, 이런 말하기에는 이곳이 너무 점잖은 곳인가.”
조잘조잘. 어깨를 으쓱.
“뭐 어때요.”
그녀는 이 코너에서 등을 돌렸다. 나는 그녀가 집었던 책을 뽑았다.
가방에 책을 넣으며 서점을 나왔다. 그녀는 내가 책을 산 걸 알고 지저귀었다. 책을 다 읽으면 느끼는 게 많을 거라느니, 여주인공에게 동정을 느낄 거라느니. 그녀는 책에 대한 감상까지 예상을 해 보는 지경에 이렀지만, 절대로 다음을 기약하진 않았다. 읽고 나서 감상을 들려달라는.
서점을 나온 뒤 거리를 거닐다보니 금방 해가 저물었다. 하늘에서는 더 이상 붉은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쁘지도 않은 칙칙한 푸른 색. 어두워 질 테니 그녀를 집에 데려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두워지는 건 핑계고, 오늘 함께 있고 싶었던 만큼 함께 있지 못 했으니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기 위해서였다. 비록 내게 관심이 없더라도, 휴대전화만 보고 있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침묵 그 자체였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게 편했다. 다시 걷는 길. 한 번 걸었던 길이라 익숙했다. 그녀의 귀갓길을 꼼꼼히 살폈다. 그녀가 다니기에는 너무 으슥하고, 가로등도 적고, 인기척도 없다. 이런 곳을 다녔을 걸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나름 괜찮아요. 무섭긴 하지만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걸요.”
내 걱정에 돌아온 답이었다.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정 무섭다면 다른 남자애라도 불러서 같이 가라고 했다. 내심 그게 나이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정말 괜찮다고 했다.
“어머니가 좀 엄격하신지라, 남자와 같이 있는 걸 멀쩡한 마음으로 못 보시는 분이세요. 며칠 전 놀이공원에 다녀온 뒤에도 한 소리 들었는걸요.”
나 때문이라니, 괜히 무안해졌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신세 많이 지네요. 덕분에 귀갓길이 무섭지 않아요.”
나도 참, 그녀를 많이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나의 단순함이 이제야 드러나는 것인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려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걷다 보니 이제껏 본 길 중 가장 으슥한 골목이 나왔다. 그녀는 이곳에서 멈췄다. 얼마 없는 가로등 불빛이 전혀 닿지 않는 곳이었다.
“여기가 가장 무서워요. 다른 사람의 눈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 곳이거든요.”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겨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어디 가냐며, 나를 따라 들어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면 꽉 찰 정도로 좁았고, 너무 어두워서 오래 바라보지 않는 한 사람을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생각보다는 깨끗했다. 더러운 게 발에 채이듯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담배꽁초는 많았지만.
“정말 어둡네.”
“이런 곳 처음이실 것 같아요.”
그녀가 내 앞에 서며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발밑의 담배꽁초를 경멸했다. 나에게 하던 경멸 같았다.
“지저분하니 어서 나가요.”
어둠 속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 하고 싶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와 희미하게 보이는 형체로 알 수 있었지만, 꼭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둠에 더 익숙해지자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끝까지 잠그지 않은 셔츠, 한 쪽 어깨에 걸친 가방, 바람에 말라버린 입술, 볼에 살짝 얹어져있는 머리카락 한 가닥, 어두운 와중에도 빛나는 눈동자. 그녀도 이 어둠에 익숙해졌을 터, 내 시선을 알아챘을까. 내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함께 앉아 있었던 대관람차 속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밀폐된 곳이 아닌데도 나와 그녀의 관계, 마음, 상황, 그 모든 것이 섞여 만들어낸 기묘한 흐름. 오늘의 너도 참 아름다웠다.
메말라 있던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이질적이었다. 거센 놀림에 소녀의 작은 신음소리가 하나 둘 떨어졌다. 여린 손길로 밀어내다가도 목을 끌어안고, 가는 허리를 젖혔다. 젖혀진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잠시 떨어져 흐릿해진 눈을 마주했다. 갑자기 왜 떨어지냐고 눈동자가 말했다. 대답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목에 입을 맞추었다. 이전보다 더 크게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이려나. 숨소리가 한층 더 거칠어졌다. 애써 참으려고 입을 꾹 다문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귀여워져서 참을 수 없었다. 촉촉해진 입술을 찾아 가볍게 부비고 다시 목으로 돌아왔다. 참지 못해 벌렸던 입에서 뇌리에 선명하게 파고들 만큼 큰 소리가 차마 잡을 새 없이 나왔다.
목선을 탐하고 있었던 입을 떼고 귓가에 속삭였다.
“소릴 크게 내면 안 돼.”
이성이 없어지고 감정과 욕망만이 남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쩌면 내 목소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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