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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안즈] 아름다워 보여 015
감상은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이번도 고맙습니다!
015
눈치 챘을까?
조용히 널 지켜보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이전이라면 내게 무슨 권리가 있어, 하고 실행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거쳤을 텐데.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녀의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관찰은 내가 그녀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부러 갈 때에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하러 가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오늘은 조금 피곤한데. 그래도 네가 보고 싶어서. 몸을 이끌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오늘따라 늘 다니는 학교는 넓기만 했다. 새삼 느껴졌다.
내가 매점에 가고 있을 때, 어떤 여학생이 나를 살짝 밀치고 재빠르게 들어갔다. 스치는 뒷모습으로도 알 수 있었다. 너였다. 능숙하게 오늘 들어온 물건들을 쓱 훑고 이름을 불렀다. 곧이어 과자와 빵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너 그거 다 먹을 수 있는 거니?
오후 수업 중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거닐었다.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 케이토는 내가 돌아다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내게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새삼. 우린 참 마주치기 힘들다. 학년도, 속해 있는 유닛도 달라서 그런가. 그러니 빨리 모셔 와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피네의 프로듀서가 된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뿌듯했다. 만약 진짜였다면, 우린 꽤 잦은 만남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는데. 자주 마주쳐서, 물질로 그녀를 묶어 두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연습실에 남아서 레슨을 도와주고, 어느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회의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자, 유닛은 그렇다 치자. 다른 학년은? 우리가 타고 난 나이를 탓하고 싶지 않으니 유급을 하지 않은 나를 탓해야 할까? 후후, 그러게. 난 병결로 많이 빠졌는데 말이지. 하지만 정말 유급 했더라면 너에게 떳떳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아. 누군가를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네. 뭐, 상관없으려나?
결국은 만나지 못했다. 역시 나이가 문제인가?
수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 그녀와 단 둘이 있을까 생각했다. 영 시간이 나지 않는다. 학생회의 남은 일을 처리하고 바로 연습실로 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귀여운―앞으로 이 형용사는 그녀에게만 붙이기로 했다만―토리와 유즈루 군이 학생회실에 있다는 것이다. 마침 와타루는 오늘 연극부에서의 볼 일이 있다고 하고. 학생회실에는 이사라 군도 있으니까, 어쩌면……. 뒷문이 벌컥 열렸다. 시끄러운 소리였다. 모리사와 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리사와 군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뭐?
뒷문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옷감을 한 가득 안고 왔다. 모리사와 군이 껴안으려 하자 늘 있던 일이라는 듯이 재빠르게 피해 뒤로 물러섰다. 옷감 때문에 문 여는 소리가 조심스럽지 못했구나.
“키류 선배는요?”
“키류는 B반이다.”
케이토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꽤 거슬렸었나. 나는 책상에 앉아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나가버렸다. 아, 차라리 이곳에 나 뿐이었더라면. 세나 군도, 모리사와 군도, 하카제 군도, 심지어는 케이토도 없었더라면.
모리사와 군의 포옹을 거절해 주어서 기뻐.
정규 수업을 마치고 곧장 학생회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사라 군뿐이었다.
“이사라 군. 오늘 트릭스타 연습이 있니?”
그러자 이사라 군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런, 곤란한데. 그렇담 그녀는 먼저 가 버리지 않을까. 내 표정이 썩 좋지 않았나. 이사라 군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을 꺼냈다. 오늘 그녀는 늦게까지 도서실에 있다고. 어쩐 일로 도서실일까, 싶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나는 이사라 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토리와 유즈루 군, 케이토가 왔다. 일을 하다 창밖을 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문득 내 마음을 전했을 때가 생각났다. 웃음이 나왔다. 그 땐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아주 안정적인 건 아니다만. 그 때에 비하면 폭풍우와 잔잔한 물결이다. 도서실이 있을 방향을 어렴풋이 바라보았다. 벽으로 막혀 있었다. 이 벽들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널 볼 수 있었을까?
문 밖에서 미세하게나마 발소리가 들리면 서류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도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혹시나 네가 찾아올까봐. 내가 이상해졌다. 문을 자주 쳐다보는 것을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이 정도면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닌가. 나를 바라보는 케이토의 눈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웃어 주었다.
“잠시 실례할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도저히 그녀를 만나고 싶어 못 참겠다. 케이토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시할 수 있었다. 토리는 빨리 다녀오라고 했고, 이사라 군은 어딘가 찜찜한 얼굴이었다.
책상에서 일어나 걸어 나가기까지 일 분. 십 보. 학생회실을 나오고 나서의 일 분. 구 보. 당나라 시인의 이름은 두보. 넌 날 시인으로 만들어. 점점 멀어질수록 내 걸음은 빨라지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
만나고 싶어. 보고 싶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서실에 도착했을 대 나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문으로 엿보니 그녀는 책을 한 아름 들고 있었다. 그녀보다 키가 큰 어느 남학생이 그 책을 들어다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그녀가 웃으며 입을 움직였다. 고맙다는 인사겠지. 다른 사람에게 웃어주는 모습도 예뻤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곧 책을 둔 책상에 앉았다. 바짝 붙어 있었다. 기분이 언짢아졌다.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가깝게 앉아 있는 걸 보고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그녀는 오른손으로는 펜, 왼손으로는 책을 펼치고 이것저것 그려가며 남학생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녀가 펜을 놓고 의자에 기대자 그 남학생과 팔이 닿았다. 그러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조금 떨어뜨렸다. 하마터면 정말 질투 할 뻔 했어.
두 사람 사이에는 무안한 기색이 흐르는 것 같았다.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만큼 확신이 생겨서겠지.
그 소년이 책을 한 아름 가지고 서가에 들어갔다. 나는 지켜보는 것에서 더 나아갔다. 도서실로 들어갔다. 다가가는 나를 보자 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띠워 내게 보냈다.
“어쩐 일이예요? 이사라에게 들었어요. 오늘 학생회의 남은 일을 마쳐야 한다면서요. 오셔도 되는 거예요?”
나는 그녀 옆에 서서 대답을 했다.
“잠깐 나온 거야.”
“으응, 그럼 안 돼요. 어서 돌아가서 일을 마치고 오시는 건 어때요?”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 아니, ‘한결’ 정도가 아니다. 살가웠고, 부드러웠고, 상냥했다. 첫 만남을 하기 전 태도와 대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내게 잠시 보이던 무관심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호의 이상이라고. 내 입맛에 더 좋은 쪽으로 맞추자면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혼란이 깃든 것 같지만 중요하지 않다.
“일 다 끝나면 뭐 해요?”
“연습 하러 가야 해.”
“몇 시에 끝나요?”
“두 시간은 잡아야지.”
그녀는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았다. 눈을 조금 찌푸렸다.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뒤라고 해도 도서실 문이 닫혀 있겠네요.”
그 말을 듣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녀가 기다린단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혹시나 기다릴 마음이 있을까봐 하고.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 했다. 어떻게 조정을 해야 그녀가 가장 덜 기다릴까. 그녀에게 최대한 맞추어 주어야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그나마 덜 염치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안해, 내가 널 기다려야 하는데.
그녀가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시계를 응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기다려 드릴까요.”
“응?”
갑작스러웠다. 사실은 바라던 말을 그녀가 내뱉어 주어서 기뻤다. 확신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내 마음을 바라보았다.
“바쁘시면 말고요.”
어깨를 으쓱 하며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고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럼, 염치없지만 오늘만 부탁해도 될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미안해하려거든 하지 마세요. 제가 늦은 적도 있잖아요?”
네가 늦은 적이 있다. 단순히 나보다 약속 장소에 늦게 나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는 문학이야. 수필로는 담을 수 없는, 소설로 풀어내기엔 너무 긴. 그래서 함축적인 시가 되는. 네가 늦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정말 약속 장소에 늦게 나왔다는 것? 아니면, 이제 나를 좋아하고 있어서. 마음이 맞닿는 것이 늦었다는 뜻일까. 내 서투른 해석들은 너무나 이른데도 그것이 정설인 양 내 마음을 차지했다.
“아무튼, 어서 돌아가서 일과 연습을 끝내고 오세요. 꽤 오래 계신 것 같다만.”
“알았어.”
“연습실 앞에서 기다릴게요.”
앉은 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말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어깨를 꼭 붙잡고 도서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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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두보의 시를 찾아봤는데 엄청 좋더라고요 새로운 존잘님...
그리고 에이안즈 다 쓰면 수정하고 내용 더 추가 해서 회지를 낼까...? 낼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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