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며 거울을 한 번 더 확인한다. 화장은 잘 먹었는지, 아이라인은 곱게 그려졌는지, 어디 삐뚤빼뚤한 곳은 없는지, 마스카라 가루가 벌써 떨어지진 않았는지, 입술에 각질은 없는지, 블러셔는 자연스러운지. 아, 손목시계는 찼나? 찼지. 좋다. 오늘은 그녀가 최고로 예쁜 날이다. 아, 아니지. 오늘의 신부를 제외하고.
발걸음이 가볍다. 구두가 또각또각. 경쾌한 운율을 형성한다. 날도 참 아름답지. 왼손으로 햇볕을 가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색이 바닷물에 비치면 참 예쁠 거야. 구름은 솜사탕을 찢어다 하늘에 둥둥 띄운 것 같다. 손에 잡힐 것처럼 생생해서 오른손을 뻗어 본다. 손가락을 꼿꼿하게 핀다. 손가락 마디에 각이 져 있다. 살며시 주먹을 쥔다. 천천히 내려 손등을 아래로 하고 펴 본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다. 이유 없이 허탈하다.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늦은 아침이다. 해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시간이다. 태양이 참 따스하다. 여유롭게 지하철에 탑승한다. 창밖을 바라본다. 스쳐지나가는 백화점이 그녀가 갈 결혼식장 같다. 자리가 나도 앉지 않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본다. 멍하니 서 있다. 결혼식이 실감 나지 않는다.
‘그 앤 참 예뻤었지.’
소식이 끊겨 이젠 끝이겠거니 했는데,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덜컥 청첩장을 보내 왔을 때 꿈인가 싶었다. 벌써? 이제 스물 하고도 두 살 더 얻었잖아. 벌써? 아직은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청첩장은 흰색이 많이 섞여 밝은 분홍빛이었다. 그 색이 신부의 감성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감수성도 풍부했고, 늘 웃었고, 웃는 모습이 예뻤고, 마음이 여렸다. 요즘 세상에 이런 여고생이 어디 있어, 했는데 정말 있었다. 비록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고 그만큼 가까워야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만.
축하한다는 인사는 하지 못했다. 오늘 만나서 하면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미루고 있었다.
지하철 좌석은 숭숭 비었고, 사람은 점점 적어져 가는데도 그녀는 서 있었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휴대전화를 보다가 창밖의 건물을 살피고, 다시 휴대전화를 보다가 고갤 들어 창밖을 응시한다.
도시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달리던 지하철이 슬슬 외곽으로 빠지자 그녀는 내린다. 이 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얼마 없다. 휑하다.
‘이런 곳에 결혼식장이 있을까?’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내가 제대로 찾아온 건 맞을까?’
신부가 이런 곳을 선호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내향적인 사람이었으니. 이런 얘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조용한 곳에서 하고 싶다고. 말을 마치고 두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 ‘시골!’이라 외치고는 웃었다. 웃음이 터질 때마다 비눗방울이 뭉게뭉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카드를 태그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청첩장에 쓰여 있는 1번 출구를 찾으려고. 청첩장을 한 번 내려다보고 시선을 올리니 1번 출구가 눈에 잘 들어온다. 발걸음을 옮긴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돌로 된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청첩장을 손에 꼭 쥐고 있다. 땀에 젖었는지 종이가 운다. 헉, 하고 손을 뗀다. 원상복귀는 못 하겠다. 어쩔 수 없다. 손끝으로 마디만 잡고 나머지 계단을 올라간다. 다 올라가니 등에 땀이 난 것 같다.
허리를 숙여 숨을 고르고, 작은 기침을 두어 번 하고 다시 허리를 세운다. 인도가 위를 향해 있고, 바로 횡단보도가 보인다. 유명한 베이커리가 보인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지만 굳은 마음을 먹고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이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올라가다보면 나온다고.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는데도 땀이 식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간 화장을 망치겠어. 오늘은 곤란한데.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인데 화장이 번지거나 조금 지워지면 우스꽝스러울 것 아닌가. 작은 손거울을 꺼내 눈가와 볼, 입을 살피고 계속 길을 간다. 이렇게 조용한 곳에 결혼식장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이 청첩장을 굳게 믿기로 한다. 길 가는 게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고, 여기서 포기하면 이곳까지 온 게 아까울 테니.
역의 출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오자 결혼식장이라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별 것 아닌데? 아까 스친 백화점에 비하면.’
내부에 들어가자 인산인해라고, 엘리베이터는 만원이지, 발 디딜 틈은 없지, 사람이 많아 후끈하기까지 하다. 사람들 속에 섞이기 싫어 계단을 찾아보는데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가득 담긴 엘리베이터 안에서 절여진다.
식장이 8층이랬지. 위태로워 보이는데 높기도 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유리로 되어 속이 비치는 가운데 갈색 테두리와 장식들이 있는 커다란 문을 지나니 환하고 밝은 결혼식장이 나온다. 지금은 몇 시지? 열한 시 반. 식 시작은? 열두 시. 예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하호호 이야기 나누는 것이 들린다. 신부 대기실은 어디 있지. 아. 꽤 가까이 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가볍게 손을 얹는다. 진정해. 손을 내리고는 신부 대기실을 향해 걸어간다. 그 곳은 문이 없다.
가까이 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곳은 신부 대기실.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눈을 뜬다. 무드 없이 한 번에. 번쩍. 하얀 색에 조잡한 금빛 장식이 되어 있는 소파에 그보다도 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먹처럼 검은 머리카락은 붉은 입술과 하얀 피부와 대비된다. 두 팔은 속이 비치는 얇은 천으로 덮여 있다. 그 천에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깨는 슈크림빵처럼 생긴 것이 꼭꼭 감추고 있고, 가슴부터 배꼽 윗부분까지는 몸매가 드러난다. 그 밑은 치마. 얇고 까슬까슬한 천들을 여러 겹 겹쳐둔 것 같다. 물 위에 피어오른 안개구나.
더 가까이 다가간다. 신부는 그녀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한다.
“너 나은이 아니야? 안 올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시절 모습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다른 남자의 여자라서 그런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신부 화장을 한 오늘의 신부는 참 아름답다.
“이렇게 와 주니까 정말 기뻐. 다시 만나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맘 같아선 일어나고 싶은데, 드레스 구겨질까봐 차마 그러진 못 하고. 내 마음 알아줘? 응?”
말을 맺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여전하구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부 측 도우미이거나 하객일까. 아는 얼굴은 없다. 다 낯설다. 하다못해 같은 고등학교 동창생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손목시계를 흘긋 본다. 열한 시 사십이 분.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흐른다. 신부가 입을 열려고 하자 도우미가 와 식을 준비하라고 알린다.
“아, 나 이제 나가봐야하네. 와 줘서 고마워. 좀 이따 사진 찍을 때 보자!”
말없이 고갤 끄덕이고 바삐 나가는 신부의 뒷모습을 본다. 치맛자락이 바닥에 쓸려 때가 타지 않도록 검은 옷을 입은 도우미가 뒤를 잡아주고 있다.
끝끝내 고교 동창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나만 초대되었나? 아님 안 왔나? 이상하다. 교우관계가 그렇게 나쁜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그녀는 식장에 들어간다. 신부 측 하객은 오른쪽. 신랑 측 하객은 많은데 신부 측은 그렇지 않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가까운 몇 명만 모인 자리 같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시간은 빨리 흐른다. 사회자가 나와 예식 시작을 알린다. 하객들이 착석하기 시작한다. 그녀도 앉았다. 마음이 심란해진다. 식장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새 신랑, 새 신부를 맞이할 준비가 되자 개식선언을 한다. 어지럽다. 양가의 어머니들이 다소곳하고 엄숙하게 나란히 입장하여 단상의 초에 불을 밝힌다. 분홍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얼굴에서 신부의 얼굴이 얼핏 스친다. 놀랍다. 놀랍도록 닮아있다.
신랑이 입장한다는 말과 함께 웅장하고 성대한 음악이 퍼져 나온다. 멘델스존의 음악이다. 신랑은 단추가 두 개 달린 재킷을 단정하게 잠그고, 빨간 나비넥타이를 한 채 늠름하게 입장한다. 그녀의 눈에 보기에 그는 미남자는 아니지만,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그런데도 왜인지 미워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흠을 잡고 있다. 너무 동글동글한 얼굴이다. 살집이 두둑하게 잡히겠네. 땅딸막해 보여. 이유 없는 악의이다.
신부가 입장함을 알린다.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다. 그녀의 눈도 뒤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되기 직전, 오래 보지 못했던 이십 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간직하려고. 왜 일찍 찾아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자신을 원망하지만 늦은 일이다. 멀리 신부가 입장한다. 파랗고 분위기 있는 조명 속에 서 있는 신부는 대기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더 아름답다. 고혹적이면서도 청아하다. 왼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부케를 들고 입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신부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온다. 그녀는 느낀다. 신부의 시선이 앞을 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눈동자는 하객석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음을.
이제 세 걸음만 더 다가오면 신부는 그녀의 앞을 지나게 된다. 신부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된다. 그녀가 침을 삼킨다. 이제 두 걸음. 모두가 신부를 주목하고 있는데. 한 걸음. 신부는 하객석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녀의 앞을 지나간다. 이곳에서 가장 찬란한 두 눈동자가 그녀의 눈동자에 머문다. 한 걸음 멀어져간다. 뒤를 바라본다. 두 걸음 멀어져간다. 뒤를 바라본다. 세 걸음 멀어져간다. 서서히 다시 고갤 돌린다.
신부의 손이 신랑에게 옮겨지고 나서 그녀는 후회한다. 이 결혼식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 불청객은 그녀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