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학생선생] 나는 매일 도서실에 간다

1차 창작/개인 창작 2016. 1. 3. 02:58

리트윗, 마음, 감상 늘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매일 도서실에 간다. 우리 학교 도서실, 시설 좋다. 책도 많다.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절판된 책도 있고, 헌책방에서나 나올 법한 책도 있다. 원서도 있다. 알고 보니 개꿀이다 싶을 정도로 재미와 내용의 알참을 보장하는 책도 있다. 그런 것 하나하나 전부 찾아 읽은 것은 아니다만, 아무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니까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도서실에 매일 가는 이유는……. 단순히 선생님 때문이다. 이 무슨 낭랑 십팔 세 여고생이 할 법한 소리를 다 커서 징그러운 사내놈이 하냐 싶겠지만 사내놈도 마음은 있다. 여자애들처럼 섬세한지는 몰라도. 아, 그렇다고 해서 절대, 절대로 그 선생님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쌤이 좀 착하셔서 말이지. 별 건 아니고 그냥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나긋나긋하고, 잘 웃어주시고. 근데 착각은 말아줬으면 한다. 남자 선생님이라서.


 그 선생님은 안경을 쓰셨다. 평범한 모범생들이 쓸 것 같은 안경이다. 딱히 개성이랄 건 없고, 얼굴을 적당히 차지하는. 앞머리는 없는 오대오 가르마인데다가 파마를 한 것 같았다. 아주 곱슬거리지는 않고 그냥 적당히. 예쁘지는 않지만. 입는 옷은 평범했다. 맨투맨이라던가, 가끔은 셔츠. 도서실 실내가 좀 더워서 외투를 벗은 모습을 자주 보았다. 외투는 그냥 코트. 길거리 다니면 흔히 볼 수 있을 코트다. 꽤 잘 어울리지만.


 나는 도서실에 갔다. 볼 일은 없었고, 그냥 어슬렁거리는 정도. 늘 그랬듯이. 도서실은 우리 교실과는 정반대에 있다. 방과 후, 나는 책을 대출하거나 반납하며 잡담을 한다. 잡담은 주로 책 이야기 아니면 학교 관련 이야기. 오늘도 다를 이유는 없다.


 도서실에 들어가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고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선생님이 계셨다. 늘 컴퓨터와는 조금 떨어져 책을 읽다가 내가 오면 의자를 움직여 컴퓨터 앞에 자리하신다. 그도 그렇듯이 올 때마다 대출이나 반납을 하니까. 오늘은 딱히 끌리는 책이 없는데, 잡담이나 할까 하다가 서가로 향했다. 생긴 건 전혀 그렇지 않지만 나름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 도서실에 와놓고선 서가에 가지 않는 것은 책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흐음, 봐 둔 책은 많은데 정작 찾으려고 하면 없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처음 보는 책과의 기묘한 만남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일본 문학 코너에서 서성이던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준 것은 얇은 현대 일본소설이었다. 특유의 분위기가 미묘해서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서가를 나와 카운터로 갔다.


 학생증과 책을 내밀었다. 받아서 카운터 밑의 책상에 올려두었다. 안경이 흘러내려 왼손 엄지와 검지로 치켜 올렸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안경은 늘 왼손으로 올린다. 선생님은 왼손으로 책과 학생증을 들었다.


“이거 재밌던데. 세 개가 이어지는 이야기야.”

“그래요? 이거 스포 당한건가.”

“아, 그렇게 되는 거야? 좀 미안한 일을 했는걸.”


 오늘도 여전히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바코드를 찍었다. 학생증과 책의 바코드를 다 찍고 나서 다시 올려놓았다. 나는 책을 챙기며 잡담을 시작했다.


“오늘 후드집업에 패딩 입고 왔는데도 추운 거 있죠. 쌤은 어떻게 저 얇은 코트 하나 입고 다니신대.”

“안에 든든히 입지.”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그 모습이 재밌었다.


“몇 겹이나 입으셨어요?”

“으음. 얇은 옷 세 겹? 얇은 거 많이 껴입을수록 따뜻하다니까.”

“앞으로 저도 그렇게 해 봐야겠네요. 두꺼운 거 한두 개로는 버티기 힘들어서 원.”


 선생님이 하하, 하고 웃으며―사실 이 정도로 호탕하진 않았고 솔직히 좀 여자애 같았다―내게 아저씨 같다는 말을 했다.


“쌤이 저보다 더 먼저 되실텐데요.”

“아, 그런가? 뭐 그럼 어때―.”


 늙는 거 별로거든요, 하고 내가 투덜대자 선생님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안경을 들어 올려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도 멋지잖아. 늙어가는 과정이 좀 무섭지만.”

“전 그게 가장 두려워요.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이 될까봐.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임신부들에게 발길질 하며 왜 노약자석에 앉아 있냐고 하거나.”

“그건 확실히 나잇값을 못 하는 것 같네. 하지만 넌 그런 어른이 되진 않을거야. 너와 이야길 나누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팔짱을 끼며 책상에 기대고, 몸을 내 쪽으로 숙이고는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왜인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왼손 엄지와 검지로 안경을 들어 올리며 정리하고 팔짱을 꼈다.


“당연히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죠. 솔직히 어른이라는 단어도 아깝다고요.”

“너 나랑 똑같아.”

“에? 뭐가요?”


 생뚱맞은 대답에 의아해하며 그대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안경을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안경을 올리는 행동이.”


 나는 다시 안경을 들어 올리고는 손만 반대이지 행동은 완전 똑같다는 걸 알아차렸다.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책을 다시 붙잡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뭘 새삼스럽게!”


 괜히 내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가방을 들어 올리고 오른쪽 어깨에 걸쳤다.


“그럼 저 갈게요!”

“그래, 잘 가.”


 내가 갈 때도 여전히 웃고 계셨다. 얼굴을 힐끔 훔쳐보고 도망치듯 도서실을 빠져 나왔다. 아, 잊자. 이게 뭐야.


 아. 잠시만.


 열심히 걷던 두 다리를 뒤로 걷게 했다. 열 걸음 정도 그렇게 걸었나. 좀 바보처럼 보이긴 하겠다. 다시 도서실로 들어갔다.


“응? 왜?”

“저 내일도 또 올 거예요.”


 김빠진다는 듯이 웃으며,


“늘 그랬잖아?”


 굳은 마음을 먹고,


“선생님 보러요.”


 평소처럼 나긋나긋하게 웃던 선생님이, 늘 웃는 얼굴이던 그 남자가 지금만큼은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 얼굴이 저렇게까지 붉어질 수가 있군. 깜짝 놀란 얼굴로 손사래를 치고 말까지 더듬었다.


“그,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안경을 정리하고 덧붙였다.


“그래도 늘 오잖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란 게 생겨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늘 그랬듯이요.”











2917자

커미션 샘플 겸 즉석에서 주제 받아서 2000자 이내로 BL 쓰기 했는데, 저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글은 3000자 이내로도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