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해지지 않으려는 생각이 거의 강박관념처럼 자리한 몽즈에게 소마의 말은 새로웠다. 이성의 동급생이 금방 떠날 걸 알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알려주려 하는 소마. 그녀라면 앞으로 쭉 볼 사이의 여성이어야 겨우 자신에 대해 말하는데. 그녀처럼 선을 긋지 않는 소마의 모습이 자신과 비교됐다.
Chapter 5
그 고민은 며칠째 이어졌다. 일상에 치여 잊다가도, 멍하니 있을 때 생각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다른 사람과 더 친해지는 걸 걱정하고 어쩌고 하기 이전에 그런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소마한테 말해볼까? 나, 프로듀스 하고 싶다고. 너희 유닛의 프로듀서가 되어도 되냐고. 으으, 그러기엔 소마가 속한 유닛 홍월은 풋내기인 그녀의 눈에 너무나도 완벽해 보였다. 그럼 아도니스의 유닛? 애초에 그쪽은 선배들 얼굴도 본 적 없다. 성 혹은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는데. 그 선배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아, 어렵다.
그녀에게 그 고민은 나름 큰 고민이었는지, 등교하고 나면 눈이 바쁠 정도로 무언가를 보고 읽던 그녀가 멍하니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은 일주일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변화는 눈치채기 쉬웠다. 친구들과 함께 주변에서 놀던 마코토는, 그 틈을 타서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저기, 몽즈 양. 무슨 일 있는 거야? 오늘따라 얼굴이 안 좋은데…….”
“뭐! 내 얼굴이 안 좋다고?”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마코토가 불쑥 나타나자 그녀가 놀라 소릴 지르며 말했다. 늘 조곤조곤, 짧게 말했던 그녀가 낸 그런 크고 높은 목소리는 처음 들은 것일뿐더러 여태 생각해왔던 아가씨나 공주님 이미지에 맞지 않았다. 두 눈을 깜빡이며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그는 당황해서, 두 손을 공중에 휘저으며 달래주었다.
“그, 전학생 양! 나 별로 이상한 짓 하려 한 거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걱정되었다는 말에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코토는 그녀를 보며 표정 변화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아 그, 미안.”
오히려 당황해서 파들파들 떨고 있는 토끼 마냥 작아진 마코토를 달랬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하고, 감사 인사를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말을 전했다. 마코토가 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라고 하자, 그녀가 웃으며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나, 빈말은 아니었다.)을 덧붙였다.
“네가 걱정해주어서 기뻐…….”
그러자 마코토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어쩌면 조금 붉어진 것 같기도. 이런 말 한마디로 이렇게 눈에 잘 띄는 반응이라니, 마코토도 참. 여자애 대하는 건 서툰 것 같았다. 그래도 순진해 보여서 귀엽네. 그녀의 주변에 있었던 남학생들은 두 부류였다. 여학생들과 대놓고 거리낌 없이 지내는 남학생, 동성끼리 놀지만, 여학생과 만나도 불편함 없이 매끄럽게 대하는 남학생. 그녀도 아무튼 편하게 대하는 쪽이었지만.
마코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다. 고민 탓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 덕에 짐을 조금 덜었다. 그런 속내를 비치지 않았으니 그야 모르겠지만, 알게 되면 조금 섭섭하겠지.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꺼냈다간 사람 좋아 보이는 마코토가 트릭스타의 프로듀서가 되어 달라고 할까 봐. 그래도 같은 반 세 명이 있는 유닛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 세 명보다 더 친한 애가 있긴 하지만. 프로듀스 하게 해 달라고 하는 건 두 눈 딱 감고 부탁하면 될 테고. 거절당하면 하는 수 없지. 프로듀스 할 거라면 이왕이면 친한 사람이 있는 쪽이 더 좋을 텐데. 그러면 프로듀스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더 친해지지는 않겠지. 아, 프로듀스 유닛의 멤버들과 더 친해지려나. 근데 굳이 안 친해지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 아, 어렵다. 어려워. 그럼 역시 소마의 유닛에 부탁해야……?
“몽즈 공!”
깜짝이야, 소마가 큰 소리로 부르는 바람에 나뭇가지 자라듯 갈래를 뻗던 생각들이 뚝 끊기고 말았다. 몽즈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왜 부르느냐 물었다. 소마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혹시 오늘 시간이 괜찮다면…… 해양생물부에 와 주지 않겠소?”
“왜?”
와 주지 않겠느냐, 라고만 해서 그녀가 되물었다. 왜냐는 물음을 뱉자마자 너무 짧게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마 역시 마코토처럼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아 그녀가 더 덧붙였다.
“해양생물부가 뭐 하는 덴지 알려줄래? 그리고 왜 나를 초대하는지도.”
그러자 소마는 차근차근 또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말 그대로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좋아하는 부이고 초대하는 건 몽즈 공에게 학교에 대해 더 소개해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고.
친해지지 않으려는 생각이 거의 강박관념처럼 자리한 몽즈에게 소마의 말은 새로웠다. 이성의 동급생이 금방 떠날 걸 알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알려주려 하는 소마. 그녀라면 앞으로 쭉 볼 사이의 여성이어야 겨우 자신에 대해 말하는데. 그녀처럼 선을 긋지 않는 소마의 모습이 자신과 비교됐다.
“혹시 생선은 아니지? 나 생선 요리 좋아해서, 조금 힘들지도.”
“해파리나 거북이 같은 거요. 식용이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소.”
해파리냉채…… 아니, 해양생물부 쪽은 열대지방의 해파리겠지. 물고기가 있어도 열대어. 고등어는 없겠지. 그녀는 가겠다고 대답했고, 약속은 점심시간으로 잡혔다. 소마는 어쩌면 그 시간엔 부장 공이 있을지 모른다며, 자신은 부장을 매우 존경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오, 고개를 끄덕이며 소마는 선배들과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 잠시 짬을 내 해양생물부에 방문했을 때, 첫인상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몽즈의 두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바닥과 수족관이 보였다. 학교에 수족관이라니, 이 학교 정체가 뭘까. 그녀는 소마의 안내에 따라 수족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양생물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는 말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한 남학생이 들어왔다.
“어, 소마 군? 옆은 누구? 잘 안 보이네. 설마 새로 왔다는 전학생인가?”
소마의 몸이 뻣뻣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 사람이 부장인 걸까?
“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부장은 아닌 것 같았다.
“나 해양생물부고? 오늘은 어쩐지 와 봐야 할 것 같아서 왔단 말이지? 그런데 이렇게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있을 줄이야.”
“접근하지 마라!”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라니, 초면에 저런 말을 잘도 내뱉는구나.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연인이어도 본인 앞에선 그런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는데.
“소마, 저 사람 많이 위험해?”
“아주 불성실한 자요.”
그거 위험한 건가?
자세히 보니, 바닷가 모래 같은 머리카락을 가졌다. 얼굴은 여우 같은 인상이었고. 그녀가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걸 느꼈는지, 남학생이 말했다.
“민들레 양처럼 귀여운 여자아이가 바라보면 부끄럽단 말이지―. 소마 군, 민들레 양에게 내 소개 좀 하게 비켜줄래?”
“안 된다!”
이 양반이 지금 뭐라는 거래. 마치 그녀를 만나기 전엔 꼭 소마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같은 상황처럼 느껴졌다. 그녀에 대한 권한이 그에게 있는 것은 아닌데. 솔직히, 그녀는 조금 불쾌했다. 게다가 지금은 21세기라고.
“소마, 그러지 말고 잠깐만 비켜 줘.”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비켜 달라고 부탁하자, 그가 마지못해 비켜주었다. 그녀와 남학생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소마가 없어지자, 남학생은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카제 카오루야. 소마 군이랑 같은 반이라면 아도니스 군과도 알겠구나? 아도니스 군과 같은 유닛이고, 3학년 A반이야. 혹시 네 이름 물어봐도 될까? 이왕이면 연락처도 함께. 오늘 시간 있는지 알려주면 더 좋고.”
“김몽즈. 연락 안 받음. 시간 없어요.”
“몽즈 양, 귀엽고 순한 얼굴로 단칼에 거절하다니 마음이 아픈걸.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시간 내줄래?”
조금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안 드는 발언은 많지만, 그만큼 정중한 면도 있었다.
“소마, 칼 꺼내지 마요. 시간은 10분 이상 안 내요.”
“아쉽네. 왜인지 물어봐도 되려나?”
대외적인 핑계가 없었다. 모두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테고. 그렇다고 당신의 발언 중 일부가 맘에 안 들어서 결코 시간 내고 싶지 않네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녀는 아주 짧은 찰나, 궁리하다 핑계를 댔다.
“소마랑…… 놀 거라.”
옆에서 카오루를 노려보고 있던 소마가 어찌나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마의 유닛을 프로듀스 하는 것도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나타낸 것뿐이지만.
“둘이 꽤 친한가 봐? 질투 나는 걸―. 근데 소마 군 반응은 마치 처음 듣는 얘기인 것 같은 걸? 아니면 둘 만의 비밀이었나? 전자라면 하여간 소마 군, 여자아이 대하는 데 서툴다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여도 능숙하게 받아쳐 주어야지.”
서툰 거 너였냐. 그나저나 카오루가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을 해서, 몽즈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오루는 이미 그녀의 말이 거짓인 걸 알아챈 것 같지만 지금 보인 행동으로 봐서는 별다른 위협은 가하지 않을 것 같, 아니야……. 물길 속은 알아도 사람은 모른댔지. 돌변할지도 몰라.
“그럼 몽즈 양, 소마 군. 난 갈게. 카나타군은 어디 있는 거야―.”
카오루는 인사 하고는 부실을 나갔다. 소마가 화를 참고 있는 기색이 뚜렷하기에 그녀가 물었다. 그는 불성실한 호색한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불성실함에 대해서는 평가를 미뤘지만, 호색한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정말 소인이랑 놀 거요?”
“아니. 한가하지만 집 갈 거야. ……저기, 시무룩해 하지 말고. 나 집이랑 학교밖에 안 다녔으니까 나랑 이것저것 해도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