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스가 단팥빵을 삼키고 말했다. 몽즈와 아도니스, 그리고 소마는 식사를 하고 남은 시간에 간식을 사서 먹고 있었다. 그녀는 주말동안 노력해서 식사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소마가 빵과 주스를 하나만 사준 게 미안할 정도로 그녀는 꽤나 잘 먹는 타입이었다.
“아, 원래 다니던 학교가 유메노사키 학원과 자매결연이 되어 있어서, 두 달 단기로 오게 된 거야. 내 전공은 아닌데, 프로듀스와 비슷한 과가 있어. 그 학생들을 이쪽으로 보내기 전에 미리 한 명을 보낸 거랄지…….”
조금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명을 단기로 보내는 건 대체 뭘까. 맛보기일까.
“왜 전공이 아닌 학생이 오게 된 것이오?”
그녀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집 이야기 이후로 두 번째로 하는 사적인 이야기였다.
“면접을 통해서 뽑혔어. 기간이 짧다 보니까 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난 조건이 됐었어. 공부도 잘했고, 학교도 잘 나왔고, 처벌도 안 받았어. 거기다 일본어 자격증이 있었고, 대화도 가능했거든. 선생님과 한 대화랑 원어민이랑 한 대화는 다르지만.”
몽즈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일본어를 듣던 소마가 말했다.
“몽즈 공, 일본어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 같소.”
“집 가서 열심히 공부했어. 그리고 이건 물어볼 거 같아서 미리 준비했다? 사실 단어가 기억이 잘 안 나. 영어로 말하고 싶어.”
“그건 듣는 것도 잘 안 될 것 같소.”
“내가 발음 잘해 줄게. 기대해도 좋은데.”
“그렇다면 사전을 챙기겠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해 준다면 기쁘다고 말했다. 언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도니스가 물었다.
“제1외국어는 영어인가?”
“응. 아마 대부분의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에서는 영어가 아닐까?”
아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마가 덧붙였다.
“몽즈 공, 그럼 제2외국어는 일본어요?”
몽즈가 고개를 저었다.
“중국어야.”
“그러오? 한자 덕에 읽기는 조금 수월할 것 같소.”
“뜻은 어느 정도 통하는데 발음이…….”
그녀는 핸드폰 메모장에 ‘茄子’라고 쓰고, 소마와 아도니스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읽어봐.”
“‘나즈なす.’ 채소 아닌가?”
“맞아, 나는 ‘치에즈qiézi’라고 읽어.”
그녀는 다시 한자를 썼다. 일 사事자였다.
“이건?”
“‘코토こと’라고 하오!”
“한국어로는 ‘사’라고 읽어.”
“이런 문제가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 역시’라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도니스는 빵을 입에 넣었다. 소마는 뭔가 대화할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녀가 책을 읽던 걸 기억하고는 물었다.
“몽즈 공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책이오?”
“Moment.”
그녀는 책의 제목을 말해놓고, 얼굴을 찌푸리며 고민하다 핸드폰 사전을 오랫동안 찾았다.
“현대 미국 소설. 작가 살아있음. 한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평생의 삶이 바뀐 남자의 이야기야.”
“그 남자가 어떤 결정을 내렸기에 그런가?”
아도니스의 물음에 그녀는 끄응, 하며 다시 사전을 찾았다. 말을 이리저리 만들더니 손가락까지 접어 가며 차근차근 정리하고, 순서도 맞춘 뒤 입을 열었다.
“그건 스포일러네. 그저 말 한마디를 잘못 했어. 그 여자는 떠날 수밖에 없었고. 남자는 평생 후회해.”
소마는 그다지 좋은 결말은 아니라고, 듣기만 해도 마음이 아파진다고 했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 역시’라 말했다. 어쩐지 아까와 비슷한 상황이 된 것 같지만, 한 주제로 오래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여러 주제로 짧게 이야기하는 상황이니까. 두 사람과 함께 있는 일은 분명 재밌지만, 이런 단조로운 대화는 따분한 축에 속했다. 어차피 평소에 대화는 잘 안 하지만. 아직은 친숙하지만 사용하기엔 낯선 언어를 쓰는 것도 어려웠고, 워낙 다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그녀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편한 길이었다. 또, 편해져서 아무 이야기나 마구 주절거릴까 봐…….
무심코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았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이를 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으로 돌아가자 스바루가 담임선생님이 아가씨를 찾았다고 전해주었다. 어째서 또 아가씨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바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담임선생님을 봬러 보건실에 갔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찮을까? 이러면 안 되지만 뭐, 봐 주겠지.
그녀가 돌아온 건 수업 종은 쳤지만, 선생님이 아직 오시지 않은 꿀 같은 타이밍이었다. 그녀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자, 곧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읽기와 듣기가 된다는 가장 좋은 장점을 이용하여 수업을 들었다. 모르는 단어는 체크 해 놓고. 메모는 꼼꼼히 해 놓고. 솔직히, 이런 열정적인 태도로 선생님께서 내주신 최고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2학년 A반의 사가미 진 선생님께서는 그녀에게 최고로 어려운 과제를 내주었다. 실습하는 셈 치고 유닛을 프로듀스 해 보라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가면 네 고국의 학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확실히, 섬세한 조언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최대의 고난이었다. 상대가 이해할 만한 명분이 부족해서 덜컥 유닛의 프로듀서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유닛도 잘 모르겠고, 프로듀스를 하며 더 친해질지도 모르겠고. 아, 어떡하지.